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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서 길 잃은 순수, 연극 ‘목란언니’

분단현실의 또 다른 피해자, 북한이탈주민
이야기의 시작은 이렇다. 평양 예술학교의 엘리트 조목란은 뜻하지 않은 사고에 휘말려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북에 있는 부모님을 서울로 데려와 준다는 사기꾼 브로커에게 속아 정착금과 임대아파트 보증금까지 사기를 당하자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한다. 어머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탈북보다 더 위험하다는 귀향을 결심한 목란은 필요한 자금 5,000만 원을 모으기 위해 룸살롱을 운영하는 마담 조대자의 집에 가정부로 취직하게 된다.

일제 강점기 독립군으로 활약했던 시아버지와 중동 건설노동자로 요절한 남편을 둔 조대자에게는 대포집을 시작으로 웃음팔고, 몸 팔고, 술 팔아 천금처럼 키운 세 자식이 있다. 그러나 박사공부까지 마친 역사학자 첫째 태산은 실연 후 우울증 환자가 됐고, 둘째는 철학과 교수지만 과가 폐강되면서 졸지에 실업자로 나앉게 생겼다. 자존심 강한 막내딸은 대필로 먹고사는 무명소설가다.

생활은 넉넉 하지만 제각각 마음의 병을 가지고 있는 이 가족들은 순수를 간직한 목란의 긍정적이고 건강한 사고방식에 조금씩 동화되고 서로의 상처를 치유해 가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길 잃은 순수를 위로하는 아코디언 연주
북한이탈주민을 주인공으로 다뤘지만 극은 단순히 남북한의 분단현실만을 지적하는 것은 아니다. 극은 크게 평범한 사람들을 통해 남북한 분단 현실의 비극을 환기시키는 것은 물론 자본주의 사회를 냉정한 시선으로 다루고 있다. 극중 순수를 상징하는 목란을 제외한 북한이탈주민들은 현실적이고 돈에 연연하는 속물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오히려 사라져가는 인문학을 상징하는 조 여사네 삼남매가 더 순진해 보일 정도다. “탈북자들은 다 너처럼 그래? 사회주의에서 왔다면서 뭔 돈을 그렇게 밝혀”라는 대사는 그래서 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사회주의를 대표하는 북한에서 온 사람도 재물에 마음이 움직이고, 나쁜 짓도 하고 착한 짓도 할 것이다. 어차피 우린 다 똑같은 사람이니까 말이다.

지난해 '대한민국 연극대상'의 작품상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의 굵직, 굵직한 연극상을 싹쓸이한 작품은 촘촘한 스토리, 속사포처럼 터지는 일상적이고 재치 있는 대사, 맛깔스러운 북한 사투리와 낯선 듯 친숙한 노래들로 자칫 무겁게만 흘러갈 수 있는 극의 활력을 더한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극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이끌어 가는 아코디언 연주다. 실제 목란언니의 모델이라는 채수린 음악감독의 아련한 '손풍금'(아코디언) 연주는 북한이탈주민, 나아가 '빨갛지'도 '파랗지'도 않은채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남북한 분단 경계에 선 모든이들의 비애를 대변한다.


장소 두산아트센터 Space111
일시 2013년 12월 29일까지
(평일 오후 8시, 토요일 오후 3시, 7시, 일요일 오후 4시 / 단, 월요일 휴관)
문의 02)708-5001
홈페이지 www.doosanartcenter.com

<글. 권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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