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1일 여의도에서 열린 ‘백령도 군장병 통일약과 전달식’에서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이애란 원장을 만났다. 북한에서는 오랜 식량난 때문에, 남한에서는 68년의 분단 때문에 북한전통음식문화가 사라져가는 요즘, 이애란 원장은 북한전통음식을 알리고 탈북 여성들의 일자리 창출에 앞장서는 한편 탈북자 북송 반대 운동을 주도하면서 통일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 이애란 원장이 추석을 맞아 백령도 해병6여단에 통일약과 6천 상자(3천만 원 상당)를 전달했다.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과 한반도통일연구원이 공동 주관하고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종로구협의회와 무궁화리더스포럼, 인천순복음교회,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등이 후원한 이날 행사에는 윤상현 국회의원, 김길자 경인여대 명예총장, 김일주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이사장 등 10여 명의 인사들과 북한인탈주민을 비롯한 관계자 40여명이 참여했다. 이애란 원장은 지난 설 명절과 3월 천안함 폭침 3주기 때도 해병대원들에게 약과 1천 박스씩을 보낸 바 있다.
이애란 원장은 인사말을 통해 “대한민국에 와서 많은 자유와 행복을 누려왔는데, 그동안 조국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안타까워하던 중 탈북여성들이 모여 개성약과를 만들면서 추석 때 고향에 가지 못하는 장병들을 위로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통일약과를 전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또한 원래 3천 개만 보내려다 더 많은 약과를 전달하고자 SNS에 올렸는데 인천방송과 인천순복음교회에서 각각 1천 박스씩을 지원하는 등 북한이탈주민뿐 아니라 정계·교계·기업체·개인 등이 십시일반 모아 6천 상자를 전달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애란 원장은 “약과는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전통음식으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이건 약과야라고 말하는 것은 약과를 먹는 즐거움을 빗대어 일의 어려움을 오히려 즐거움으로 생각하라는 반어적 표현”이라고 소개했다. 따라서 군장병들도 “이것은 약과야라고 생각하면서 나라를 지켜달라는 간절한 마음에서 통일약과를 만들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인천순복음교회 최성규 목사는 개회사를 통해 “탈북이웃들이 정성과 사랑으로 만든 이 약과가 군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대한민국을 세우는 일에 크게 이바지할 것”이라며 “설 명절 때는 다 힘을 모아서 모든 장병들에게 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윤상현 국회의원은 “한가위 명절에 장병을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에 경의를 표한다”며 “통일약과의 염원이 대한민국 전역에 퍼지고 이북에 계신 분들도 다 함께 즐기는 날까지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다. 그밖에 북한이탈주민지원재단 김일주 이사장, 통일부 김석우 전차관, 김길자 총장, 가천대학교 이용희 교수, NH지식인연대 김흥광대표, 한옥정, 한반도 통일연구원 김경웅 원장 등이 각각 격려사를 했다.
11일 트럭에 실려 인천항에서 배에 선적된 ‘백령도 국군장병 추석맞이 통일약과’는 이튿날 새벽 후백령도로 옮겨진 뒤 해병대 6여단 장병에게 전달됐다. 이애란 원장은 각 상자마다 기증자 이름표를 붙여서 장병들에게 전달했다.
이애란 원장은 통일약과에 담긴 국민들의 마음을 전하며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가 유지되고, 안보가 걱정되지 않도록 우리의 영토선이자 생명선인 NNL을 잘 지켜달라”고 당부했다. 또한 “65만 군장병 모두에게 통일약과를 보낼 수는 없지만 더 많은 국민들이 후원을 해주시면 2만 박스 정도를 만들어서 육해공군 장병들에게도 보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약과 전달식을 가진 후에는 천안함 46용사 위령탑을 찾아 추모하고 그들의 용기와 희생 앞에 고개 숙여 헌화를 했다.
이애란 원장은 2009년 북한전통음식문화연구원을 열고 현재 12명의 탈북 여성들과 함께 약과 등 북한 음식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이 연구원의 캐치프레이즈는 ‘밥상에서부터 시작되는 통일’이다. 통일 문제를 이념적으로만 접근하지 않고, 서울과 평양의 음식문화가 서로 만나면 자연스럽게 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이 원장의 생각이다.
연구원은 탈북 여성들의 직업훈련교육과 북한음식 만들기를 통한 통일체험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직업훈련교육을 위해 ‘능라교육원’을 설립해 북한전통음식전문가 과정을 운영하면서 북한 특선 요리, 연회 요리, 냉면과 온면 제조, 북한식 건강요리 등에 대해 쉐프나 예비 창업 점주들에게 강의를 한다. 게다가 북한이틀주민들의 남한 정착을 위해 생활문화 정착 및 스피치 강좌 등도 마련했다.
음식은 남과 북이 서로의 문화를 배우고 알아가는 가장 좋은 매개체이기도 하다. 그래서 학생이나 외국인들이 방문하면 북한음식 교육을 하면서 통일교육도 병행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음식을 만들어보면서 통일 체험교육을 같이 하니까 비록 비용은 더 들지만 반응이나 효과가 좋았다”고 말했다.
이애란 원장은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 운동’에 그 누구보다 강한 열정을 갖고 활동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2월, 18일간 단식하는 모습이 언론에 상당수 보도되면서 ‘탈북자 북송 반대 운동’이 일반 국민들에게 알려져 공감 여론 형성에 기여한 바 있다. 그밖에도 이 원장은 탈북자강제북송반대 국민연합을 만들어 전 세계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560일 가까이 파고다공원 앞에서 강제북송 반대 릴레이시위를 펼치고 있다.
이애란 원장이 이처럼 탈북자 강제북송 반대운동에 열정적인 이유는 스스로가 17년 전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온 북한이탈주민이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출신성분 때문에 어릴적 평양에서 추방돼 8년 동안 시골마을에서 생활하던 중 이 원장의 가족 이야기를 쓴 사촌동생의 책이 미국에서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갈 위기를 맞았다. 이에 탈북을 결심했고 만약 잡히면 그 자리에서 죽기 위해 쥐약을 품은 채 부모님과 함께 갓난 아들을 데리고 탈북을 했다.
이 원장은 “탈북자 북송은 가정 폭력을 당한 사람을 다시 폭력을 휘두르는 사람에게 넘겨주는 것과 같다”면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외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탈북자 북송을 중지하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또 “한국정부가 노력은 하고 있지만 국제 사회나 외교에서 민감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역할은 한정돼 있다”면서 “정부가 할 수 없는 사각지대의 일들을 민간이나 정치인들이 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애란 원장은 탈북 후 한국사회에 정착하기까지 많은 일을 겪어왔기 때문에 지금 북한이탈주민들의 삶의 무게를 잘 이해하고 있다. 북한 신의주경공업대학 식료공학부를 졸업한 후 북한 국가과학기술위원회에서 13년간 품질감독 등으로 근무하다가 한국에 도착했지만 IMF 하에서 청소부·보험설계사 등을 전전해야 했다. 하지만 북한에서 힘들었던 삶을 생각하며 노력한 결과 2009년 이화여대에서 식품영양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경인여대에서 겸임교수를 맡기도 했으며 2010년에는 미 국무부가 수여한 ‘용기 있는 국제 여성상’을 수상하는 등 탈북인 가운데 가장 성공한 인사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이애란 원장은 “책임감을 갖고 노력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원장은 “북한에서 ‘책임을 진다는 것’은 ‘혹독한 댓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다보니 탈북자들이 책임지는 것을 무서워하고 회피하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한국에 와서 살다보니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은 개인들이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며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것은 신뢰를 쌓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노력하다보면 탈북자들도 금방 책임감을 습득하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애란 원장은 “탈북자 2만7천여 명이 누가 시켜서 온 것이 아닌 것처럼 통일도 언젠가 그냥 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우리가 그것을 대비하면서 노력하다 보면, 통일 후 예상되는 그 어떠한 갈등이나 어려움을 쉽게 넘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민주평통의 2만 자문위원들도 각 5명씩만 책임지고 교육하면 10만 명이 통일을 바라게 되고, 10만 명이 다시 5명만 책임지면 50만 명이 되어 국민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변할 것”이라며 준비만 잘 하면 통일은 축복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글, 기자희 / 사진. 나병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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