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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감 좌충우돌 남한 적응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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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부랑 영어, 아예 통째로 외웠어요”

2008년 남한에 와서 올 1월 공무원으로 사회에 첫발을 디딘 A씨. 임기제이고 탈북민을 배려한 전형이어서‘운 좋게’ 공무원에 임용되었다고는 하지만,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외국어 또한 유창한 실력파다. 직장인 새내기가 된 A씨는 열심히 일을 배우면서, 곁에서 조언을 아끼지 않는 선배, 동료들과 함께 행복한 직장생활을 해나가고 있었다.

'헤어숍' 두고 미용실 찾아 삼만리

이미지 A씨는 지난해 가을 미국인과 결혼을 했다. 그래서인지 지금은 대화 도중 가끔 원어민 같은 영어발음이 튀어 나오기도 하지만, 7년 전 막 남한에 왔을 때는 영어가 매우 생소한 언어였다.
“머리를 손질할 때 북한에서는 미용하러 간다고 하거든요. 밖에 나가 미용실을 찾았는데 주변에 하나도 없는 거예요.”
무작정 걷고 또 걷다가 도저히 미용실을 찾지 못한 A씨는 지하철을 타고 ‘번화가’라고 들었던 왕십리역까지 나온 뒤에야 겨우 가게를 발견했다.
“그때도 간판보고 간 게 아니라 우연히 미용하고 있는 게 밖에서 보이기에 들어갔지요. 나중에 외래어가 좀 익숙되니까(익숙하니까) 집 근처에 헤어숍이 보이더라고요. 지하철역으로 가는 길에 헤어숍이 두 개나 있었는데도 당시에는 못 본 거죠.”

이미지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영어 때문에 눈물을 펑펑 쏟은 적도 있다. 전공과목 중 하나인 생물학 수업의 시험자료가 전부 영어로 되어 있었는데 파워포인트로 25페이지에 달하는 분량이었다.
“슈가, 글루코, 리피드가 어쩌고 저쩌고 꼬부랑 글씨를 보는데 뭐가 어떻게 되는지 하나도 모르겠는 거에요. 그래서 아예 통째로 다 외워버렸어요.”
그런데 시험지를 받아든 A씨는 아연실색을 했다. 질문 부터가 전부 영어였던 것.
“자료는 다 외웠는데 질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겠는 거예요. 2주 동안 그 많은 시간을 들였으니 답을 못 쓰고 나간다는 게 용납이 안됐어요.”
그래서 A씨는 손을 들어 질문을 해석해 달라고 교수님께 요청했다. 하지만 ‘지금은 수업시간이 아니라서 설명해 줄 수 없다’며 그냥 최선을 다해 보라는 답변만 돌아왔을 뿐이다.
“거의 백지로 낸 뒤 나와서 두 시간 쯤 운 것 같아요. 그땐 정말 힘들었는데, 나중에 지나고 보니 그때 외운 게 전공 공부하면서 정말 많은 도움 되더라고요.”

저 가시나, 어디 감히 남자를 박나?

A씨는 탈북 과정에서 행방불명된 엄마 대신 아빠와 남동생까지 세 가족의 살림을 도맡아 했다. 대학까지의 통학거리가 먼 데다 실험실까지 다녀야 해서 새벽에 집을 나서곤 했는데, 돌아와서 보면 집안일은 전부 A씨의 몫으로 남겨져 있었다. 아침 점심 먹은 설거지는 그대로고 집청소도 안돼 있는 데다 빨랫감도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곤 했다.

이미지 “가족회의를 소집해서 울면서 하소연했죠. 남동생에게도 ‘한국에서는 이러면 여자친구도 못만난다, 여자 할 일 남자 할 일 따로 있냐’ 하면서 3개월을 싸웠더니 이젠 좀 나아졌어요.”
A씨는 남한은 그래도 남녀평등 의식이 보편화 돼 있는 거라며, 북한에서는 남존여비 사상이 정말 강하다고 말한다. 여자들이 장마당에서 돈을 벌어오기 때문에 오히려 대우를 받고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더니 아니란다(웹진 12호에서는 북한에서 여성의 지위가 향상됐다는 내용이 나간 적이 있다, ▶바로가기 클릭).

“가정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여자들은 하루 종일 장마당에 나갔다가 들어오잖아요? 그런데도 집에 오면 밥하고 육아를 해야 돼요. 남자들은 별로 하는 게 없어서 낮전등이라고 불러요. 필요 없는 전등이란 뜻이죠.”
이혼을 하는 가정은 없는지 물었더니 요즘 북한에서도 이혼을 하긴 하는데 친정에 가 있으면 옆동네에서 이혼했다고 눈길을(눈치를) 줘서 힘들다면서, ‘모든 걸 다 감수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그래서 A씨의 아빠는 가끔 남한의 TV를 볼 때 불쾌해 하실 때가 있다.

“얼마 전 가족들이 모여 TV 드라마를 보는데 여자가 남자를 한 대 박은 거예요(때린 거에요). 아빠가 그걸 보시더니 저 가시나 어디 감히 남자를 박냐고, 맞으면서 사는 한국 남자들 진짜 불쌍하다고 하시더라고요.”

'자매님' 친근한 어투 이상했지만 이젠 이해해요

A씨는 교회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한국에 올 수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신앙을 갖게 됐고 한국에서도 교회를 다녔다. 남한에서도 잘 알려진 꽤 큰 교회였는데, 특히 크리스마스날 어마어마하게 많이 모인 신도들을 보며,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이 한군데 모일 수 있는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런 A씨에게 또 한 가지는 이해할 수 없는 게 있었으니 바로 ‘교회식 친근함’이다. 이미지 “자매님 잘 왔어요~ 하며 엄청 친근하게 대하시는 거예요. 첨엔 그런 모습이 진실되지 않게 느껴지더라고요.”
낯선 곳이니까 경계를 하며 지내다보니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올라치면 ‘나한테 뭘 바라지?’라고 먼저 생각하게 되곤 했다고. 그런데 더 이상했던건, 교회에서 만나면 ‘자매님~ 자매님~’ 하면서 살갑게 대하던 사람들이 주중엔 연락 한 번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반가운 척 하고 잘 왔다고 하시더니 연락 한 번도 없대요. 그런데 일주일 뒤에 교회를 가면 또 자매님~ 자매님~ 그러시거든요. 그땐 이상하다 했는데 조금 지나니까 제가 그렇게 되더라고요. 아, 안녕하세요. 자매님~ 잘 지내셨죠? 이렇게요. 그냥 대인관계를 맺는 방식이었던 거죠.”

이미지 2008년 당시 자신에게 진로 지도를 해주던 한 교인에게는 좀 미안한 마음도 든다. 남한에 와서 의대에 진학하고 싶었지만 ‘경쟁이 치열해서 힘들 것 같다’고 말씀하셔서 크게 반발을 했던 기억이 있기 때문.
“길고 짧은 건 대봐야지, 북한사람은 안 된다는 게 어딨어요? 되는 사람 되고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는 거지라며, 제가 막 화를 냈었어요.”
A씨는 북한에서 공부를 꽤 잘했지만 ‘뇌물을 쓰지 않아서’ 진학에 실패했다고 한다. 자신보다 성적이 낮은 친구들 중 부모가 돈을 쓴 애들은 다 의대에 갔다는 것이다. 대학진학에 실패하고 농삿일을 돕거나 미싱을 배우면서 A씨는 서러운 마음에 문턱에 앉아 엉엉 울었기도 했었다. 그리고 남한에 와서 또 한번 이를 악물고 의대 진학에 도전했지만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현실적인 여건을 감안해서 충고해주신 건데 그때는 그 분이 북한 사람을 차별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차라리 그때 일찌감치 포기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솔직히 남아요.”

그래도 현재 공무원인 A씨는 구직활동을 많이 하지 않고도 생각보다 빨리 취업이 된 게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작년 말 졸업한 후 여러 곳에 면접을 다녔지만 번번이 미끄러지기도 했었다.
“한국 사람들도 보통 취업하는데 일 년은 걸린다는 말을 들었어요. 탈북민에 결혼까지 해서 취업에 더 불리하다고 생각했는데 다행히 북한이탈주민들을 특채로 모집하는 기회가 있어서 채용될 수 있었어요. 좋은 기회를 주신 것에 감사하고 공직자로서 더 열심히 국민들을 위해 봉사할게요.”

<글. 기자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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