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
헌법적 특성으로 인해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유지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집권 3년 차를 흔히 의미 있는 치적을 내기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많은 경우 골든타임은 성과와 위기의 교차점에 서 있었다. ‘남북 기본합의서’를 이끌어낸 남북 고위급회담의 시작, 민주화 이후 최초의 전국 단위 지방자치제 실시, 역사적인 6·15 정상회담 등이 골든타임 기간에 진행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천안함·연평도 사건도 골든타임인 집권 3년 차에 발생한 대표적 위기에 해당된다. 성숙과 평화는 의지만으로 이뤄지지 않는 법이므로, 골든타임을 활용한 의미 있는 성과는 정교한 리더십, 국민적 합의, 경제적 안정, 국제사회의 응원이 맞물려야만 비로소 이루어낼 수 있는 것이다.
박근혜정부의 신뢰 프로세스는 남북한 관계 개선과 평화통일을 ‘신뢰’라는 요소를 통해 펼쳐나가겠다는 매우 창의적인 문제의식을 전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수많은 대북정책이 북한의 변화와 비핵화를 유도하는 데 실패한 이유는 합의, 약속, 국민적 지지, 국제사회의 후원 등과 같은 요인들만으로는 부족해서이고, ‘신뢰’라는 가치 지향적 측면이 간과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박근혜정부는 소위 ‘기능주의’적 대북 접근이 가지는 거래적 측면의 한계를 개선하면서, 동시에 후퇴와 파기가 반복되지 않는 견고한 평화를 만들고자 시도하고 있다. 한 마디로 평화통일을 정착시키기 위해 ‘신뢰’라는 새로운 남북관계의 DNA를 이식시키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아직까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많은 원인이 있다. 무엇보다도 신뢰는 상대방을 전제로 한 원칙인 동시에 게임이므로, 북한이 최소한의 성의를 보이지 않는 한 신뢰 프로세스의 추진과 발전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처음부터 신뢰 프로세스를 북한이 환영하면서 손뼉 칠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아무리 우리의 의도가 지선(至善)이어도, 북한은 무조건 자기 체제를 전환시키려는 의도로 해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박근혜정부의 남은 3년 동안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향배는 온전히 지금부터의 매우 정교하고 생산성 높은 정책 개발에 달려 있다.
신뢰 프로세스를 함께 추진할 국내 민간 행위자와 국제사회의 우호 세력을 적극 발굴해 정치적 민감성이 떨어지면서도 동시에 북한 주민에게는 적극적인 메시지가 전달되는 의제를 중심으로 남북한 사이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네트워크적 결합망을 구축해야 한다. 어차피 신뢰가 있고 없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측정 불가능한 대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지난 2년간 성공적으로 안착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문제의식과 방향성이 이제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길 기대해 본다.
박인휘
미 노스웨스턴대 정치학 박사. 현재 통일부·외교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통일준비위원회 전문위원(외교안보분과), 민주평통 상임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