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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체제 파워엘리트

좌충우돌 파격 인사로 충성 경쟁 강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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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2012년 11월 말 장성택 숙청을 앞두고 양강도 삼지연을 방문한 김정은(앞)과 조연준 당 제1부부장(검은 털모자),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왼쪽에서 두번째) 등 ‘삼지연 8인 그룹’.

김정은 집권 후 북한 엘리트 집단이 요동치고 있다.
당과 군의 핵심 지위에 있던 기존 인물이 해임되거나 강등되고 신진 인물이 보직에 오르고 있다. 김정은은 유학 경험이 있는 국제 감각을 가진 지도자라는 이미지 관리 전략과는 달리, 최고 간부들에게 과잉 충성을 요구하며 경직된 리더십을 보이고 있다.
김정은 엘리트 체제의 현주소를 점검해본다.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북한 김정은 권력이 요동치고 있다. 최고 실세그룹인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자리에서 최룡해 당 비서가 최근 축출되고, 당과 군의 핵심 지위에 있던 인물이 적잖이 해임·강등되는 변화가 나타난 것이다. 빈자리는 권력투쟁에서 기세를 잡은 세력이나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이 발탁한 신진 인물로 채워진다.

북한 관영매체들은 3월 9일 한 행사에 참석한 최룡해를 ‘노동당 정치국 위원 겸 당 비서’로 불렀다. 당 정치국은 “당의 모든 사업을 조직 지도”(당 규약 25조)하는 기구로 당국가인 북한에선 최고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상무위원회는 김정은 제1위원장과 헌법상 국가수반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명실상부한 2인자 자리를 굳혀온 최룡해가 멤버였던 북한 권력의 세 축이라 할 수 있다. 최룡해의 ‘강등’을 비롯한 권력 내 변화는 2월 18일 평양에서 열린 노동당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당연히 김정은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최룡해의 정치국 상무위원 해임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권력 2인자의 자리 굳히기나 세 불림을 달가워하지 않음을 알게 한다. 이는 김정은이 집권 이후 해마다 최고 실세 인물을 바꿔왔다는 점에서도 드러난다. 김정은의 공개 활동 수행 횟수를 기준으로 볼 때 집권 첫해인 2012년에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106회)이 최고 실세였다면, 이듬해는 최룡해 군 총정치국장(153회, 당시 직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지난해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126회)이 가장 많이 김정은의 곁을 지켰다.

새로운 실세 삼지연 8인 그룹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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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김정은의 아내 이설주 대신 김정은의 곁에서 자주 모습을 드러내며 실세로 떠오르고 있는 동생 김여정(문 뒤쪽의 여성).

김정은 시대 들어 부상한 권력 핵심 세력을 추려보면 이른바 신(新)실세로 불리는 ‘삼지연 8인 그룹’이 드러난다. 이들은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3년 12월 고모부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을 무참하게 숙청할 때 체포와 재판 같은 상황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당시 김정은과 함께 백두산이 있는 삼지연 지구에서 대책회의를 했다.

김원홍 국가안전보위부장을 필두로 상황을 총괄한 것으로 관측되는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당시 노동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비롯해 김양건 당 통일전선부장,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 박태성 조직지도부 부부장이 멤버다. 김정은의 주요 건설 프로젝트를 총괄해온 마원춘 설계국장의 경우 평양 순안공항 리모델링 공사를 부실하게 해 지난해 11월 숙청됐다는 얘기가 나오지만 머지않아 재기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 후계자 만들기에 ‘다걸기(올인)’한 공신 세력도 탄탄한 입지를 굳히고 있다. 생모 고영희를 도와 막내아들인 김정은을 후계자로 옹립하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진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조연준 당 제1부부장이 그들이다. 스위스 조기 유학 때 후견인을 맡았던 현지 대사 출신 이수용(당시 이름은 이철)은 대외정책 사령탑인 외무상에 앉았다. 최부일 인민보안상이 지난해 5월 평양시 아파트 붕괴 참사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것도 김정은의 어린 시절 농구교사로서 끈끈한 정을 쌓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른바 항일 빨치산 2세로 불리는 최룡해(최현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는 부침이 있기는 하지만 김정일 시대에 이어 김정은 정권에서도 최고 실세 그룹에 포진해 있다. 군부에서는 황병서 총정치국장이 당분간 최고책임자 자리를 지킬 것으로 관측된다. 황병서는 지난해 4월 군 차수로 진급한 데 이어 5월에 총정치국장으로, 9월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는 등 속도를 냈다.

승승장구하는 이들과는 다른 운명을 맞은 이들도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 장례식 운구차 7인방이다. 이들은 직접 운구 행렬을 이끌어 김정은 시대 가장 잘나갈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대부분 몰락하거나 세력을 잃었다. 아버지 김정일이 군부 과외교사로 낙점해준 이영호 군 총참모장은 불과 7개월 만에 숙청됐고, 고모부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 역시 반당종파 혐의로 처형당했다. 80대 고령인 김기남·최태복 당 비서만 직위를 유지하는 상태다.

‘모퉁이 실세’ 여동생 김여정 중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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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군부대를 방문중인 김정은 곁에서 수행원들이 열심히 지시를 받아적고 있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북한식 적자생존법이다.

주목받는 파워엘리트로는 한광상 당 재정경리부장과 마원춘 국방위 설계국장, 김병호 선전선동부 부부장, 홍영칠 기계공업부 부부장, 박태성 평안남도 당 비서가 리스트에 오른다. 이들은 50, 60대로 상대적으로 젊은 편인 데다 전문성을 갖춘 관료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지난해 김정은의 현지 지도 때 한광상은 65회, 마원춘은 39회를 수행해 가장 횟수가 많은 그룹에 속했다.

내각은 박봉주 총리와 노두철 부총리겸 국가계획위원장이 최측근 그룹에 포진해 김정은 체제의 북한 경제를 이끌고 있다. 올해 55세인 이용남 대외경제상은 대외 부문에 밝은 소장파 경제 관료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6월 무역성, 조선합영투자위원회, 국가경제개발위원회 등 3개 기구를 통합해 출범한 대외경제성은 경제특구 개발을 책임지고 있어 향후 그가 어떤 역할을 해나갈지 주목되고 있다.

김정일 시기와 다른 큰 특징 중 하나는 김정은의 가족인 이른바 평양 로열패밀리가 전면에 나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점이다. 여동생 김여정은 지난해 3월 오빠의 공개 활동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11월부터는 군부대 방문 등을 소화하면서 활동 폭을 넓혀가고 있다.

당 부부장으로 불리지만 김정은과 상당한 거리를 두고 신중한 행보를 해왔다. 이 때문에 노동신문 사진이나 조선중앙TV 영상에는 늘 구석진 곳에 보일락 말락 나타났다. 대북 정보분석관들이 ‘모퉁이 실세’라고 불렀던 이유다. “모든 일은 여정 동지를 통해 이뤄진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그녀가 김정은 관련 업무를 직접 챙기는 것으로 파악된다. 최근에는 김정은의 공개 활동을 단독으로 수행하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김정은의 부인 이설주는 최근 들어 활동이 뜸해졌다. 시누이 김여정의 움직임이 늘면서 이설주는 조용한 내조 쪽으로 역할 분담이 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의 고모 김경희 당 비서는 남편 장성택 처형으로 한때 사망설까지 나왔지만 국가정보원은 “충격으로 공개 활동을 자제하고 있으나 신상에는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김경희는 신병 치료차 중국에 체류했으나 지난해 10월께 다시 평양으로 돌아온 것으로 전해진다.

김정은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권력과 체제를 공고화하려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그의 리더십 실험은 북한의 파워엘리트뿐 아니라 경제, 사회 등 각 분야에 급격한 변화를 몰고 왔다. 때론 좌충우돌하는 모습도 드러낸다. 군 고위 간부 인사를 보면 이런 모습이 감지된다. 장성급 핵심 인사들의 계급과 보직이 수시로 바뀐다. 군 총참모장과 인민무력부장은 잦은 교체로 롤러코스터를 탄 것 같다는 말까지 나왔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은 2012년 7월 총참모장으로 이동하며 차수로 승진했으나, 3개월 만에 대장으로 강등됐다. 이듬해 5월엔 해임됐고, 2014년 6월 인민무력부장으로 복귀하는 등 굴곡을 겪었다. 김정일 집권 시기, 인민무력부장인 김일철과 김영춘이 각각 9년과 3년 재임했던 것과 차이가 난다.

군부 고위 인사를 중심으로 핵심 간부층 임명과 보직 해임, 벼락 진급과 강등을 되풀이하는 걸 두고 김정은의 용인술과 관련 있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농구를 좋아하는 김정은이 선수들을 수시로 투입했다 빼곤 하는 인사 스타일을 드러낸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권력 승계가 이뤄졌다는 평가도 있지만 중·장기적으로는 김정은 체제가 계속 순항하기 어렵다는 쪽에 무게중심이 옮겨지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올 초부터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비롯한 미국 행정부의 중심부에서 북한 김정은 체제의 종말을 예고하는 언급이 쏟아진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은 듯하다. 김정은 체제가 단기적으로 안정 궤도에 접어드는 형국으로 보이지만 오래가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농구 경기 스타일’의 용인술

물론 현재로선 김정은 체제의 권력 안정을 해칠 북한 파워엘리트들의 특별한 움직임은 드러나지 않는다. 간부들에 대한 철저한 감시 체제와 사회 통제 시스템이 이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특히 장성택 처형의 충격파가 당·정·군 간부들을 꽁꽁 얼어붙게 만들었다. 고모부까지 무참히 숙청하는 김정은의 모습을 보며 권력 핵심층부터 전문 관료까지 무조건 복종하는 모습을 연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것이다.

군부대나 공장을 방문한 김정은이 이런저런 지시를 내리면 수행간부 모두가 일제히 받아 적는 모습은 과거와 다르다. 김정일 집권 시기에는 수행진 중 실무 간부 몇몇만이 하던 메모를 이제는 예외 없이 해야 하는 상황으로 바뀐 것이다. ‘적는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북한식 ‘적자생존’ 표현이 생겨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런 경직성은 단기적으로 충성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북한 체제에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책 결정이나 추진 과정에서 경직성이 높아지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융통성 있는 대응도 어렵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파워엘리트 계층 내부에서 김정은의 리더십에 대한 반감이 표출되거나 불만 여론이 생겨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특히 경제 이권을 둘러싼 권력 내 계파 간 갈등이 증폭될 개연성도 제기된다.

현재 평양 권력 핵심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31세 최고지도자에 대한 찬양과 과잉된 충성경쟁은 더욱 수위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때 일각에서는 김정은이 서방에서 유학한 경험이 있다는 점을 들어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도 나왔다. 하지만 절대권력을 거머쥔 김정은은 민생보다는 유일지배와 3대 세습 체제의 공고화에 집중하는 형국이다. 경제·핵 병진노선을 내세우면서 주체 이데올로기와 선군정치란 낡은 프레임에 스스로를 가둬둘 경우 자칫 슬픈 운명의 지도자로 남겨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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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 중앙일보 통일전문기자
고려대 대학원 북한학 박사과정 수료. 미국 우드로윌슨국제센터(WWICS) 연구학자, 민주평통 상임위원 역임. 중앙일보 통일문화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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