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23 | 20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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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3만 명 시대, 실질적 통합 방안은?

‘북한 아빠, 중국 엄마, 한국 아이’의 가정을
어떻게 대한민국의 가정으로 만들 것인가

경기 안성시 소재 하나원 1층 교육장에서 탈북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경기 안성시 소재 하나원 1층 교육장에서 탈북자들이 교육을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 이미 정착한 탈북민은 ‘탈북민’에서 제외하고 새 탈북민을 정착 지원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어법을 교육시켜 법을 지키는 탈북민을 만들어야 한다.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은 2016년 11월 통일부는 ‘사회통합형’ 정책을 내놓았다. 보호·지원과 자립·자활을 넘어 이들이 진정한 우리 사회 일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기존 정책을 보강했다.

탈북민을 친근한 이웃으로 느끼도록 사회 인식을 개선하고, 탈북민 정책의 협업체계를 개편함으로써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그리고 민간 사이에 유기적 협업체제를 구축해 지원체계의 효율화를 꾀한다는 목표를 내세웠다. 정착 단계별로 필요한 지원을 구체화하고 탈북민의 역량을 높인다는 다양한 구상도 포함했다.

달라진 정착 환경과 입국하는 탈북민의 특성을 반영한 정부의 개선 방안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보완이 필요한지, 탈북민과 함께하는 실질적인 사회 통합 방안을 재점검해본다.

첫째, 탈북민 3만 명 시대를 맞았으니 탈북민이 몇 년 정착하면 탈북민 범주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착의 연한을 정하든지 아니면 정착 정도를 정성적으로 평가하는 기준을 만들어, 어느 정도까지를 탈북민에 포함할 것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탈북민 누계도 중요하지만, 정책 대상이 되는 탈북민이 몇 명인지 설정하는 ‘정책 수혜 대상 탈북민’을 적실성 있게 산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탈북자 수로 체제 경쟁을 하던 단계가 지났기 때문이다. 탈북민도 한국에서 몇 년을 지내거나 어느 수준 이상으로 정착하면 탈북민이 아니라 비(非)탈북민이 되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3만여 명 중에서 ‘헌 새터민’은 솎아내고, ‘새 새터민’에게 사회통합형 정책을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보호 및 조사 단계에서 ‘대한민국 법 준수 의식’ 교육을 더 비중 있게 실시해야 한다. 탈북민의 심리 안정과 건강관리에도 신경 써야 하지만, 새로운 사회인 ‘대한민국’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이전에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준법의식과 국가 정체성을 함양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나는 북에서도 법을 지키지 않고 살았는데, 여기서도 법을 지킬 필요가 뭐 있느냐”고 하는 탈북민을 우리사회에 그대로 편입시킬 수는 없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이해하는 기초교육과 함께 대한민국의 법을 준수해야 한다는 준법의식을 확실하게 인지시키는 강도 높은 교육이 실행돼야 한다.

대한민국 법 준수의식교육 강화해야

언어교육에도 예전과 다른 관심과 비중을 두어야 한다. 우리말을 하는 동포라고 가볍게 여기기에는 남북의 언어가 너무 달라졌다. 언어는 정착과 자활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 요소인데 우리는 이 점을 간과했다. 최근에야 이 점에 눈을 떠 하나원 기초 적응교육에서 언어교육에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만 아직 많이 부족하다.

일본으로 탈출한 북송교포의 자녀들이 일본어를 모른 채 일본에 거주하게 됐기에 오히려 일본에 정착하기 쉬웠다는 사실이 언어교육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언어 배우기로 일본 적응을 시작하다 보면 자연스레 일본 문화와 사회를 습득하더라는 것이다.

셋째, 탈북민의 가족 실태를 감안한 정책이 실행돼야 한다. 온전한 가족을 구성하고 들어온 탈북민이 전체 탈북자의 4% 남짓한 상황을 도외시한 채 가족 관련 정책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북한 아버지, 중국 엄마, 남한아이’라는 가족 구성의 특성을 고려해야 한다.

북한식 삶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아버지, 중국에서 오래 살아서 중국식 삶에 익숙해진 엄마, 엉겁결에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대한민국에 정착하게 된 아이 중에서 한국 생활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은 어린아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야말로 다문화가정이다. 겉으로는 온전해도 부조화와 갈등이 내재한 가족인 것이다.

화교 간첩 용의자로 기소됐으나 2014년 무죄를 선고받고 추방된 중국인 유우성. 탈북자로 위장한 유 씨가 유유히 한국 대학을 다니고 정착 생활을 한 것은 탈북민의 올바른 정착을 막는다.화교 간첩 용의자로 기소됐으나 2014년 무죄를 선고받고 추방된 중국인 유우성. 탈북자로 위장한 유 씨가 유유히 한국 대학을 다니고 정착 생활을 한 것은 탈북민의 올바른 정착을 막는다.

이런 문제를 풀어줄 수 있는 세심한 심리 상담과 치료가 가능한 정착 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실질적 사회 통합’의 목표가 돼야 한다. 그래야 북한 주민들이 오고 싶어 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낼 수 있다.

넷째, 전체 탈북민의 80%를 상회하는 여성 탈북민을 배려하고 보살피는 정책이 아직 많이 부족하다. 그들이 처한 무를 수 없는 기막힌 사연을 따뜻한 정책으로 풀어 주는 융통성이 부족하다.

미혼모 혜택을 받기 위해 한국에서 결혼해 남편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결혼 신고를 하지 않고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학교에 진학하고서도 ‘아빠 있는 아빠 없는 아이’로 자라는 경우가 발생한다.

3국에서 태어난 탈북 자녀 배려해야

당사자들은 “미혼모 혜택을 일정 기간 줄 수 없느냐”고 탄원해보지만, 법이 정한 기준 때문에 예외가 가능하지 않은 상황이다. 정착, 출산, 결혼, 양육 등의 짐을 모두 짊어져야 하는 탈북 미혼모의 애로사항을 보듬는 따뜻한 정책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태조사가 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

이번에 마련한 방안 중에는 제3국 출생 자녀에 대한 지원 강화 방안(양육가산금 제도)도 포함돼 있다(현재 법제처 심사 중). 이 방안이 시행되면 이들에 대한 정원 내 대학 특례입학과 대학 첫 학기 등록금 지원도 가능해질 것이다. 이중언어 강사 배치와 언어교재 개발도 이루어진다.

2016년 12월 현재 2500명이 넘는 탈북 청소년 가운데 제3국 출생 자녀가 1300명이 넘는 현실을 고려해 마련한 적극적인 정책이다. 그러나 첫 학기 등록금만 지원해주면 다음 학기부터는 학교를 그만둬야 하느냐는 걱정이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한 후속 방안을 정부는 고심해야 한다. 왜 ‘첫 학기 지원’이라는 발상이 나오게 되었는지도 무척 궁금하다.

다섯째, 법의 틈새를 나쁘게 활용하거나 불법을 저지르는 것을 묵인하는 정책적 무관심이나 직무유기를 근절해야 한다. 좋은 규정과 법을 만들기만 하고 이의 시행을 엄격하게 하지 못하면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다. 부작용만 초래하고 만다. 오래된 묵인의 대표적인 사례가 기초수급대상자에서 탈락하지 않기 위해 가짜 진단서를 제출하는 사례다.

2016년 10월 12일 경기 안성시 하나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회 외통위 의원들이 하나원의 현황을 설명듣고 있다. 이제는 보고와 통계를
위한 탈북민 정착 교육보다 탈북민을 대한민국인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2016년 10월 12일 경기 안성시 하나원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국회 외통위 의원들이 하나원의 현황을 설명듣고 있다. 이제는 보고와 통계를 위한 탈북민 정착 교육보다 탈북민을 대한민국인으로 만드는 실질적인 정책의 추진이 필요하다.

‘어느 병원에 얼마를 내면 가짜 진단서를 언제든지 끊을 수 있다’는 탈북민의 남한살이 처세술이 새로 들어온 북한이탈주민에게 전수되고 있다. 임대주택 거주 자격을 잃지 않으려고, 자동차를 구입하면서 다른 사람 이름으로 등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정착 관련 법망의 틈새를 나쁘게 활용하는 것이다. 정책은 만드는 것만큼 엄격히 실행하는 것에도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한다.

여섯째, 청소년의 학교 적응력을 높이기 위해 사회통합형 정책에 포함시킨 대학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예비대학 과정을 ‘선택이 아니라 필수’로 해야 한다. 특별전형을 통해 여름 또는 가을에 합격한 경우 다음 연도의 입학 전까지를 대학 오리엔테이션 기간으로 정하고, 이를 이수해야만 장학금을 주는 방안을 제도화해야 한다.

필수로 이수하는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서는 예비대학 과정을 만든 취지를 살릴 수 없다.
탈북민 대학생의 대학 중도 탈락률이 남한 대학생의 2.6배인 것을 개선하기 위해선 느슨하게 운영해온 지원 방식을 철저하게 재점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미국 연수 보내게 영어 잘하는 탈북자를 소개해달라’는 요구가 탈북 학생들의 자립과 자활 의지를 얼마나 꺾는지도 사회에 인식시켜야 한다. 영어 잘하는 극소수의 탈북 학생은 좋은 부모 덕분이다. 이러한 탈북 학생은 아주 적은데 우리 사회에서는 영어 잘하는 탈북 학생을 찾는 문화가 생겨났다.

민주평통 부산진구협의회가 개최한 통일 수다방. 남북의 주부들이 터놓고 시집 흉을 보다 보면 하나가 된다. 탈북민의 80%가 넘는 탈북 여성을
우리 사회가 끌어안으려면 흉금 없는 멘토링이 필요하다민주평통 부산진구협의회가 개최한 통일 수다방. 남북의 주부들이 터놓고 시집 흉을 보다 보면 하나가 된다. 탈북민의 80%가 넘는 탈북 여성을 우리 사회가 끌어안으려면 흉금 없는 멘토링이 필요하다

멘토 자격 제도를 도입하라

같은 맥락에서 대안학교와 일반학교에서는 새 생활에 잘 적응하는 학생을 표준으로 삼아버려, 따라가지 못하는 학생들의 의지를 꺾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교육적 차원에서 이는 기본부터 재점검해야 할 사안이다.

끝으로 ‘멘토’는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라 일정 정도의 사전교육을 수료한 이에게만 주는 제도화 과정이 필요하다. 뜻만 있고 제대로 멘토 역할을 할 줄 모르는 멘토링의 부작용이 얼마나 큰지 파악해야 한다. 민주평통이 발간한 멘토링 사례집을 읽어보고 학습하는 최소한의 사전교육이 필요하다. 무자격자의 멘토링 때문에 얼마나 많은 탈북민들이 서운해하고 배신감을 갖는지를 알고, 멘토링의 제도화를 서둘러야 한다.

이런 점들이 보완·개선된다면 이번에 마련한 사회통합형 탈북민 정책은 지향한 목표에 더 다가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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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강대 정치학 박사. 서강대 부총장, 북한연구학회장 및 북한이탈주민연구학회장 역임. 민주평통 운영위원 및 통일정책위원장. 통일부·국방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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