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와 북한 인권
“증오를 버리지 않으면,
나는 여전히 감옥에
성분에 따라 계급을 나눠놓고 정치범수용소를 통해 잔혹하게 인권을 탄압하는 북한을 돌려놓기 위해 우리는 심금을 울리는 문학을 잉태해야 한다. 북한주민의 인권을 위해서… 만델라의 우분트 정신이 남아공을 치유했듯이.
넬슨 만델라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흑백 분리 차별정책을 끝내고 백인과 흑인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이끈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인물입니다. 인종차별주의 정권하에서 27년간 복역했지만 복수보다는 용서와 화합을 주장해, 증오와 복수심으로 치닫던 사회를 진정시킴으로써 흑백 내전을 막아냈습니다.
만델라는 자서전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Long Walk To Freedom)>에서 “자유로 안내하는 문을 향해 걸어 나오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에 쓴 뿌리와 증오를 버리지 않는다면 여전히 감옥에 머물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라고 기록해놓았습니다.
아프리카에는 ‘우분투(Ubuntu)’ 정신이 있다고 합니다. ‘너로 말미암아 내가 존재한다’는 뜻입니다. 남아공은 럭비 강국인데, 럭비는 백인의 전유물이었습니다. 남아공 럭비 국가대표팀의 유니폼에는 백인의 우월성을 의미하는 상징이 들어가 있었습니다. 할리우드 스타인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이 만든 럭비 월드컵 영화 ‘우리가 꿈꾸는 기적 : 인빅터스 (Invictus)’에는 만델라가 집권한 직후 남아공 팀이 우승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만델라와 ‘우분투’ 정신
당연히 선수들은 백인들이었고 그들은 인종 차별을 뜻하는 유니폼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델라는 문제의 그 유니폼을 입고 백인 선수들을 포옹하며 격려합니다. 영화는 만델라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그 유명한 흑백 분리 정책을 실행한 고(故) 헨드릭 버워드의 미망인을 방문하는 장면도 보여줍니다. 용서와 화합의 모습입니다.
그는 과거 청산을 사법으로만 하지 않고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통해 치유하는 장으로 만들었습니다. 죄를 저지른 사람이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고백한 죄에 대해서는 부분적 사면을 해줬습니다. 희생자와 그 가족들은 진실을 알게 되고, 가해자는 죄책감을 내려놓고 도덕적 책임을 지게 했습니다.
인권은 ‘인간이라는 이유로 누리는 기본적 권리’라고 정의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기본 전제이며 인권은 보편성, 불가분성, 도덕성 그리고 우선성이라는 특성을 가진다’고 합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인권선언으로는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 미국의 독립선언,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 미국의 권리장전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유엔 창설로 유엔헌장이 제정되고, 유엔은 세계인권선언을 통해 보편적인 인권 보호 기준을 마련했습니다.
이 인권선언이 근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인권 문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나치독일에 의한 유태인과 소수자 학살을 본 국제사회는 국가가 지켜야 할 의무와 보호해야 할 인간의 기본적 권리조항을 모아 이 결의안을 만들었습니다.
국제사회는 이 인권선언을 토대로 자유권 규약, 사회권 규약을 만들었고 인종 차별과 여성, 아동, 고문, 난민, 장애 등 주제별 국제 인권규약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은 대부분의 인권협약에 가입해 있습니다. 북한은 자유권·사회권 규약, 여성 차별 철폐 규약, 어린이권리보호규약 등 핵심 인권규약에만 가입했습니다.
북한은 전 주민을 3개 부류, 51개 정치·사회적 계급으로 나눠놓았다고 합니다. 이는 인도의 카스트보다 더 심한 신분제도이고, 남아공의 흑백 분리 정책에 버금가는 정치·사회적 신분 차별정책으로 평가됩니다. 한번 결정된 신분은 이동이 불가능합니다. 국군포로나 기독교인의 자손은 최하계급으로 분류돼 교육, 직업, 결혼, 사회복지 등 모든 분야에서 차별받습니다. 이들은 식량이 부족하면 가장 먼저 굶어 죽을 것입니다.
북한은 1991년 유엔에 가입했으니 유엔헌장과 세계인권선언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북한은 유엔의 핵심 인권규약이라고 할 수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규약(자유권 규약),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규약(사회권 규약), 여성 차별 철폐 규약 그리고 어린이권리보호규약에 가입했습니다. 무력 분쟁 시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전쟁 희생자 보호를 위한 1949년의 제네바조약(제네바 협정)’과 ‘전쟁 범죄 및 비인륜적인 범죄에 대한 시효 불적용에 관한 조약(대량학살 협약)’도 비준했습니다.
북한은 구소련의 굴라그(Gulag·정치사상범 강제노동수용소)와 나치 강제수용소에 버금가는 정치범수용소에 국민의 1% 정도(약 20만 명)를 수용하고 있습니다. 강철환 씨의 <수용소의 노래>, 신동혁 씨의 <세상 밖으로 나오다>라는 증언서와 통일연구원과 국가인권위원회,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등의 보고서를 보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에서는 고문과 신체 절단, 강제노동, 성폭력, 특정 종교인의 멸절, 영아 살해, 적법 절차를 거치지 않는 처형 등이 공공연히 벌어지고 있습니다.
정치범은 그 가족 3대가 처벌받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강철환 씨는 아홉 살 때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고, 신동혁 씨는 정치범수용소에서 태어나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았다고 합니다. 죄가 없는 어린이들을 처벌하고 수용소에 구금하는 것은 유엔의 자유권 규약, 어린이권리보호규약은 물론이고 북한의 헌법과 형법도 위반하는 불법적이고 반인륜적인 행위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지나칠 수 없는 차별과 인권 침해의 예들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는 크레용에 ‘살색’이 있었습니다. 단일민족으로 교육받을 때는 전혀 이상하지 않았는데, 다문화 시대를 맞자 살색이 살색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결국 한 초등학생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해, 그 색은 ‘살구색’으로 이름이 바뀌었습니다.
과거 인권은 불온한 단어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인권 감수성을 키울 수 있는 책과 단편영화를 제법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껜 경북대 로스쿨의 김두식 교수가 쓴 <불편해도 괜찮아>를 권해드립니다. 그 책은 재미있다고 생각했던 영화가 차별과 편견 덩어리라는 것을 알려줍니다. 김 교수는 액션영화 ‘300’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페르시아와 스파르타의 전쟁을 그린 영화 ‘300’은 액션이 넘치고 재미있는 전쟁 역사 영화입니다. 그러나 장애인을 비하한 영화이기도 합니다. 건강하지 않은 갓난아이를 골짜기에 던져버리고, 스파르타 조국을 배반한 악의 상징을 아무런 근거 없이 척추장애인으로 그려놓은 영화입니다.”
아동·청소년용으로는 <북한 아이들의 비밀일기>를 추천합니다. 북한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라는 질문으로 시작된 이 책은 북한 내 아이들의 실상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국제기구와 국제 구호 등 국제 인권에 관심이 있는 분들께는 대한민국 초대 인권대사인 박경서 박사의 <그들도 나처럼 소중하다>를 권하고 싶습니다. 안경환 교수의 <법과 사회와 인권>과 조효제 교수의 <인권의 문법>도 일독을 바랍니다.
통일한국은 민주주의와 인권 중심국이 돼야 합니다
북한은 최소한, 정치범수용소에 있는 죄 없는 어린이와 여성들을 석방해야 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한계가 있습니다. ‘내정 간섭을 해선 안 된다’며 북한 주민들의 어려움을 외면하는 것은 이 시대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는 가정폭력을 그 집안 문화이거니 하고 놔두는 것과 같습니다.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역설적으로 북한을 넘어서야 합니다. 인권 존중이라는 보편적인 가치를 통해 인권규범의 국가적인 내재화를 이뤄나가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고 지키기 원하는 국가 핵심 가치로 결정해야 합니다. 집안에 가훈이 있듯이, 국가에도 국가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요즘 식으로 말하면 국가 가치를 국가브랜드화하는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표방하는 국가원칙이 인간 존중과 인권, 자유, 민주, 법치 그리고 창조와 도전정신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원칙을 기반으로 북한과의 관계를 정치적 레토릭(Rhetoric) 단계에서 보편적인 인권 논의로 이끌어나가야 합니다. 북한 인권 문제는 우리 민족의 아픔입니다. 우리는 북한을 짐이라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노벨문학상을 기다리며
북한 문제는 우리를 훈련시키고 준비시키는 과제입니다. 만델라가 ‘우분투’ 정신으로 백인을 포용했던 것처럼 우리도 북한 주민을 품어 안아야 합니다.
저는 10년 안에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우리나라에서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문학 작품은 북한 정치범수용소를 다룬 내용일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문학은 인간의 삶을 담아내는 그릇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간이 다른 인간을 박해할 때,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의 삶을 잘 모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노예제도가 폐지된 데는 링컨 대통령의 결단이 중요했지만, 해리엇 비처 스토가 쓴 <톰 아저씨의 오두막>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우리는 <안네의 일기>를 통해 나치의 잔학성에 대해 반성한 바도 있습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강제노동수용소 시절의 경험을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 <수용소 군도>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헤르타 뭘러는 루마니아 차우셰스쿠 정권의 고문과 인권유린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굶주림과 비단>으로 그렸습니다. 2014년 대한민국에서 발간된 단편소설집 <고발>은 북한의 작가가 ‘반디’라는 필명으로 쓴 것입니다. 자유에 대한 갈망과 성분의 굴레 안에서 억압당하는 북한의 실상을 잔잔히 표현하고 있습니다.
제 바람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와 국내외 작가들을 모아 북한 인권 문화 캠프를 여는 것입니다. 700만 해외동포를 대표하는 작가들과 탈북 작가들이 모여 북한 인권을 논하고 전 세계가 소통할 수 있는 보편적 문학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면, 북한의 정치범수용소는 문을 닫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고난문학은 영혼을 정화하고 맑게 합니다. 여러분 모두를 캠프에 초대합니다.
원재천 소장·한동대 법학부 교수
미국 브루클린 법학전문대학원 법학 박사. 뉴욕주 검사, 민주평통 자문위원, 국가인권위 정책교육국장, 법무부 국제형사특별자문위원회 위원 역임. 현재 대한적십자사 인도법자문위원회 위원, 법제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법무부 인권강사, 한동대 통일과평화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