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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zine Vol.41 | 20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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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공감 | 좌충우돌 남한 적응기

‘착하다’고 칭찬했는데
‘바보’라고 알아들어요!

성인들은 하루 중 절반 가까이를 직장에서 보내기 때문에, 가족보다 직장 동료들과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곤 한다. 
그래서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일상의 행복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탈북민들에게도 직장동료들은 중요하다.
이번호에서 만난 진숙(가명, 함흥) 아주머니는 ‘직장을 다니며 남한 생활을 배워야 가장 빨리 적응할 수 있다’며 남한 사회를 잘 모른다고 주저하지 말고 직업을 먼저 찾을 것을 권했다.

북한 사람 ‘드살이 센’ 건 환경 탓이랍니다!

2000년대 중반 한국에 온 진숙(가명) 아주머니는 경기도에 있는 한 제조공장에 다니고 있다. 오후 4시쯤 일찍 일이 끝나면 직장에서 함께 일하는 서너 명의 탈북민 동료들과 가끔 만나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한다. 지금이야 다들 익숙해졌다지만 처음에는 남한 직장에 적응하지 못해 힘든 시기가 있었다.
“북한에선 직장엘 다녀도 크게 힘든 일이 없어요. 시간만 때우면 된다는 생각이었죠. 물론 월급이 한 끼 살이 밖에 안 되긴 해요. 돈을 벌려면 비법적(불법적)으로 장사를 하죠. 그런데 남한에선 ‘일한 만큼 번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하더라고요? ‘이래서 잘 사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우린 체력도 약하고 일도 많이 안 해봐서 영 힘들더라고요. 처음에는 잔업이라는 소리만 들어도 어찌 시간이 안 가는지.(웃음)”

1년쯤 지나면 곧잘 적응한다지만, 성격에 따라 그 시기가 조금 늦춰지기도 한다.
“한 언니가 있었는데 드살이 세요. 남한 말로 하면 다혈질이란 뜻이죠. 어느 날 라인에서 불량품이 나와 지적을 받았는데 죽어도 인정을 안 했어요. 그냥 ‘예 알았습니다’하고 넘어가면 되는데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는 거죠. 북한에선 목소리 높은 사람이 이기고, 가만히 있으면 ‘머저리’ 취급을 받으니까 끝까지 인정을 안 하더라고요.”

일러스트 이미지뒤에서는 회사 욕을 하다가도 막상 사장 앞에서는 한마디 말도 못하는 남한사람들이 못마땅하기도 했단다.
“북한에선 ‘애로대응대’ 같은 게 있어서 뭐든 마음에 품지 말고 다 말하라고 배웠거든요. 한국에 와보니까 뒤에서는 의견(불만)들이 많다가도 막상 사장님 앞에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입을 딱 닫고 있어요. 솔직하게 말하라고 해서 말하면 나중에 다 돌아오고요. 그 뒤부터는 의견이 있어도 안 나타내고 감정 있어도 나쁜 말은 안 해요.”
그래서 ‘남한사람들은 다 대포쟁이(거짓말쟁이)’라고 생각했다는 진숙 아주머니는 “그래도 지내다 보니 인간의 도리 같은 건 여기(남한)가 정확하더라”고 말했다. 다행히 첫 직장 사장님은 실향민 출신이어서 그런지, 동료들에게도 진숙 아주머니를 ‘따뜻하게 대해주라’며 자주 당부하시고 개인적으로 많이 다독여주셔서 직장에 더 빨리 잘 적응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난 착한 사람이 아니에요’ 울면서 얘기해요

탈북민과 남한사람이 같이 근무를 하다 보면 언어 차이로 울고 웃는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진숙 아주머니는 “북한에서 ‘착하다’는 건 말 그대로 착하단 뜻인데 남한에서는 ‘바보’라는 뜻으로 쓰인단 걸 나중에 알았다”고 말한다(물론 남한에서도 일반적으로는 착하다는 뜻으로 쓰인다).
“같은 라인에서 일하는 한 언니가 저에게 잘해주셔서 ‘언니는 정말 착한 사람이에요’라고 하니까 ‘진숙아, 나 착한 사람 아니다’ 이러는 거예요. 나중에 또 그 언니보고 착한 사람이라고 했더니 ‘자긴 착한 사람이 아닌데 착하다고 했다’며 막 우는 거예요. 얼마나 당황스럽던지. 나중에 알고 보니 바보라는 말로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최고 좋단 뜻이었거든요.”

일러스트 이미지 ‘돼지 잡았다’는 표현을 두고 남북한사람들이 다르게 받아들여 한참을 웃은 적도 있다. 진숙 아주머니가 다니는 공장의 행정과 직원이 “오늘 우리 층에서 돼지 많이 잡았어요”라고 말하자 남한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탈북민 동료가 “아, 여기는 층내(실내)에서 돼지를 잡는가?”라고 말했던 것.
“우리 공장에서는 매년 돼지저금통에 틈틈이 동전을 모았다가 연말이 면 깨서 파티를 하거든요. 돼지저금통 깬 것을 돼지 잡았다고 말한 건데 그분은 진짜 살아있는 돼지를 사무실에서 잡은 줄 알고 놀란 거죠.(웃음)”
지금이야 새로 온 탈북민에게 이것저것 가르쳐주는 선배가 됐지만 진숙 아주머니 역시 처음에 왔을 때만 해도 커피 타는 법을 몰라 진땀을 흘렸다고 한다. 커피가 뭔 줄도 모르고 마셔본 적도 없었던 진숙 아주머니는 ‘커피 한 잔 타오라’는 말에 정수기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해야 했다.

“모른다고 말하기 싫어서 ‘예’라고 하긴 했는데 영 모르겠는 거예요. 한참 망설이다가 커피 타는 방법을 물어봤더니 컵에다가 물을 붓고 커피를 넣은 뒤 저으면 된다고 하기에, 물을 가득 부어서 찰랑찰랑하게 갖다 줬더니 난처해하더라고요.”
진숙 아주머니는 그때 커피가 ‘잠도 안 오게 하고 몸에 안 좋은 음료’라고 해서 몇 년간 마시지 않았는데 티타임 때 동료들과 함께 먹어보니까 피로감도 없어지고 좋은 것 같다고 했다. 그녀는 “가마치(누룽지)처럼 탄내가 좀 나고 써서 사탕(설탕)가루를 듬뿍 넣어야 맛있는 것 같다”며 웃었다.

15분 거리를 헤매다 두 시간 늦었어도, 이젠 모두 옛 일

정규직으로 취업하기 전 식당에서 잠깐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는 진숙 아주머니. 그런데 문제는 아르바이트 장소까지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거였다. 북한에서는 마땅한 교통편이 없어 10리(약 4km), 20리를 거의 걸어서 다녔는데, 남한에선 교통편이 잘 돼 있어도 이용할 줄 모르니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한번은 약속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적도 있다고.
“음식점 사장님은 전화해서 15분이면 오는 거리를 왜 못 찾느냐며 답답해하시고, 옆에서 듣던 버스운전 기사님은 반대로 탔다며 내려서 어떻게 하라는데 알 수가 있어야죠. 그땐 반대편에서 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으니까요.”

일러스트 이미지늦게 식당에 도착하자 일은 잔뜩 밀려있고 사장님은 화가 나 있었다. 일을 마친 후 일당을 세어보니 두 시간만큼의 돈이 비어있었다. ‘늦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다는 진숙 아주머니는 그 뒤로도 몇 번 그 식당에서 일을 했는데 ‘케첩 가져와라’, ‘부르스 타(버너) 가져와라’ 지시를 받을 때마다 그게 뭔 줄 몰라 아무거나 후다닥 와서 집어가곤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나중엔 사장님도 제가 북한에서 왔다는 걸 아셨어요. 나이 지긋한 여자 사장님이셨는데 어느 날 소고기를 많이 싸주시는 거예요. 왜 주느냐고 물어봤더니, 첫날 두 시간 치 월급을 깎은 게 마음에 계속 걸렸다고 하더라고요.”

한편, 진숙 아주머니는 혹시 이 글을 읽는 ‘남한사회 초년생’ 탈북민들이 있다면 도움을 주고 싶다며 에스컬레이터 쉽게 이용하는 법도 알려줬다.
“지하철에 가면 대부분 에스컬레이터가 있는데 처음에는 계단이 막 움직이니까 언제 발을 디뎌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서거든요. 저도 어떤 언니가 알려줘서 해봤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탈 때는 겁내지 말고 단번에 두 발을 딱 ‘띠어서’ 훌쩍 올라타면 쉽더라고요.”
진숙 아주머니는 지금은 이렇게 쉬운 걸 그땐 왜 그리 헤매다녔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활짝 웃었다.

<글. 기자희>

북한에서 ‘함흥간장’은 만능화폐?

※ 위 사례에서 소개된 북한의 문화는 북한이탈주민 개인의 경험에 의한 것으로 현재 북한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지역과 탈북 연도를 참조해주세요. <나의 살던 고향은>은 북한이탈주민에게 듣는 내고향 이야기입니다.

※ 웹진 <e-행복한통일>에 게재된 내용은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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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 전체 기사 보기 기사발행 : 2016-06-08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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