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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이사와 주거생활 김 동 식 박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이사철이 다가온다. 해마다 봄이 되고 새 학기가 시작되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이사철.
남한에서는 보통 개학을 앞둔 봄과 가을에 이사를 많이 한다. 그래서 봄과 가을에는 학군이 좋은 강남지역을 중심으로 집값도 많이 오른다.
그러면 북한에도 이사철이 있고, 주민들이 남한처럼 봄과 가을에 이사를 많이 할까?

북한에는 이사철, 이삿짐센터가 없다

결론부터 말하면 북한에는 이사철이라는 것이 없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한마디로 북한에는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기 때문이다.
좀 더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북한주민들에게 거주이전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는 보다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그것은 거주이전의 자유에 앞서 직업선택의 자유가 없다는 것이다. 사실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으면 자연스럽게 거주이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북한에서도 간부들이 보직이동을 할 경우에는 자연스럽게 이사를 한다.

그러나 북한의 일반주민들은 자기의 의사와 적성과 상관없이 당국에서 배치하는 직장에 가서 일해야 한다. 도중에 마음대로 직업을 옮길 수 있는 자유도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처럼 자기 아이들을 좋은 학교에 아무리 보내고 싶어도 보낼 수가 없다. 철저하게 거주지별로 학교를 배정하기 때문이다.

사진 북한에 거주이전의 자유가 없다고 해서 이사까지 절대로 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북한에서도 직업을 바꾸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가 살고 싶은 지역 또는 자기가 살고 싶은 아파트로 이사를 갈 수 있다. 다만 이사를 가려면 당국의 허락을 받아야 하는데, 그것이 상당히 까다롭고 어렵다. 평범한 주민들의 경우에는 마음에 드는 지역이나 주택으로 이사하는 것이 하늘의 별따기보다 힘들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정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이사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니까 이사수요가 현저히 적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이사를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이삿짐센터가 있을 리 없다.

주택거래소가 부동산중개소를 대신하는 북한

우리나라에서는 이사를 할 경우 먼저 부동산중개소를 통해 집을 알아본 다음, 적당한 집이 있으면 계약을 하고 이삿날이 되면 이삿짐센터에서 이사를 대행해주는 것이 일반적인데, 북한주민들은 어떻게 이사를 할까?
북한에서는 이사를 하려면 먼저 각 시ㆍ군 인민위원회 ‘주택배정과’라는 부서에 가서 주택사용을 허락한다는 증서 즉 ‘주택사용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주택배정과는 명칭 그대로 주민들에게 새로 지은 주택을 배정하거나 기존 주택의 사용권을 조절하는 국가기관이다. 그래서 주택배정과 소속 직원들은 파워가 막강하고 뇌물도 많이 받는다.

사진 주택배정과로부터 해당 주택에 대한 사용허가증을 발급받은 경우에 한해 그 주택으로 이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주택배정과가 허락하는 것은 주택에 대한 사용권이지 주택소유권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주택을 비롯한 북한의 토지와 건물 등 부동산은 100% 국가소유이기 때문이다.

흥미 있는 것은 북한당국이 최근 들어 주민들로부터 자금을 거두어들이기 위해 ‘주택거래소’를 통한 주택 사용권 거래를 허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주택배정과는 기본적으로 새로 지은 주택 배정 업무만을 하도록 하고, 주택배정과가 관장하는 주택거래소를 별도로 설치해 놓은 다음 기존주택 사용권 거래업무를 관장하도록 하고 있다. 주택거래소는 개인들로부터 주택사용권 매매를 위탁받아 이를 가운데서 중개해주고 수수료를 받아 국가에 납부하는 것이다. 최근 평양의 고급 아파트 1채 가격이 30만 불씩 한다는 소문이 도는데, 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아파트 소유권에 대한 매매가격이 아니라 아파트 사용권에 대한 매매가격이다.

아파트와 주택만 있는 북한

우리나라의 주거시설은 아파트나 단독주택 또는 다세대 빌라나 연립주택, 상가주택 또는 주상복합아파트 등 표현이 다양하다.
물론 북한에도 아파트와 주택이 있고 연립주택도 있다. 그렇지만 북한에서 주거시설에 대한 명칭은 ‘아파트’와 ‘주택’이라는 두 가지 표현밖에 없다. 2층 이상 되는 주택(연립주택)은 무조건 아파트라고 하고, 단층짜리 주택의 경우에는 그냥 주택 또는 단층집이라고 하며 ‘땅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단층짜리이면서 1자로 길게 여러 가구가 붙어 있는 주택은 하모니카처럼 생겼다고 해서 ‘하모니카집’이라고도 한다.

현재 북한의 평양이나 함흥ㆍ원산 등 대도시의 경우에는 아파트가 많은 편이지만, 중소도시와 농촌지역의 경우에는 단층주택이나 2~3층짜리 연립주택이 대부분이다. 그것은 중소도시나 농촌지역에까지 층수가 높은 아파트를 지으려면 강재와 시멘트도 많이 필요하고 엘리베이터도 설치해야 하는데 그럴 형편이 안 되기 때문이다.

사진 특히 농촌지역에는 흙벽돌로 지은 단층짜리 단독주택이 많은데, 이를 ‘문화주택’이라고 한다. 문화주택은 60년대 초반에 지어진 방 2칸에 부엌이 달린 단독주택인데, 아직도 북한 농촌지역의 주요 주거시설이다. 물론 북한 농촌지역에는 초가집도 많다. 북한은 1980년 진행된 노동당 제6차 대회를 앞두고 초가집을 기와집으로 개량하는 작업을 실시했으나 아직도 일부 지역에는 초가집이 그냥 남아 있다.

아파트에 아궁이가, 방안에는 텐트가 있다

사진 북한주민들의 주거환경은 한마디로 상당히 열악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아파트나 단층주택을 불문하고 난방이 가장 큰 문제다. 심지어 아파트에 난방용 온수를 공급하는 파이프와 별도로 구들장을 놓고 아궁이까지 만들고 있는 형편이다. 보통 평양과 대도시에는 화력발전소 또는 자체 보일러를 돌려 난방을 보내주고 있으나, 연료난으로 발전소나 보일러 가동이 제대로 안 되서 난방 또한 정상적으로 보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즉 난방이 안 될 경우 불을 때서 방을 덥히기 위해 아궁이를 만드는 것이다. 아궁이가 없는 아파트 주민들은 난방이 공급되지 않으면 집안에 비닐텐트를 설치한 다음 있는 옷을 모두 입고 온 가족이 텐트 안에 들어가 서로 부둥켜안고 체온으로 텐트 내부를 덥히면서 잠을 청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파트의 경우 전기문제도 큰 애로사항이다. 일반주민들이 생활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는 전기가 오지 않아 서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고층에 집을 배정받는 것을 꺼려하고 있으며 돈 있고 권력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저층에 살려고 한다. 단전(斷電)이 자주 되고 단전시간도 길어 냉장고가 거의 필요 없다. 그래서 몇 시간 단전이 되어도 빨리 녹지 않아 식품이 덜 상하는 냉동고가 인기 있는 제품이다. 전기가 부족하기 때문에 전열기와 같이 전력이 많이 소모되는 가전제품은 아무리 추워도 당국이 사용하지 못하게 통제한다.

아파트에서 생활하는 주민들의 경우 물 문제 또한 심각한 상황이다. 전기를 비롯한 각종 물자의 부족으로 수돗물을 생산ㆍ공급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이로 인해 먹는 물만 겨우 공급하거나 그것도 안 되면 가까운 곳에 가서 지하수를 떠서 들고 아파트를 올라가야 한다. 그래서 샤워는 물론 화장실 사용도 거의 불가능하다. 겨울에 더운 물이 나온다는 것은 더더욱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겨울에 더운 물이 나오는 아파트는 최고위급 간부들이 사는 고급아파트 외에는 없다. 그래서 일반주민들은 냄비에 물을 조금 끓여 거기에 찬물을 약간 섞은 다음 그 물에 적셔낸 수건으로 몸을 닦아내는 식으로 샤워를 대신한다.

또한 주민들이 음식을 만들 때 사용하는 가스나 석유 등 연료문제도 심각한 수준이다. 북한의 산에 나무가 없는 것은 원래부터 곡식을 심기 위해 베어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땔감이 없어 나무를 베어 땔감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며, 그 다음 나무를 베어낸 빈자리에 곡식을 심은 것이다.

<사진제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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