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의 어휘 이질화는 ‘언어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과, ‘교류 단절’에서 비롯된 것으로 크게 구분할 수 있다. 언어 정책의 차이에서 비롯된 어휘 이질화는 다시 ‘규범어 설정 지역 차이’, ‘표기 규범 차이’, ‘언어 순화 정책 차이’, ‘외래어 차이’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남측은 서울말을 중심으로 규범어를 정하였고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 북측은 평양말을 중심으로 규범어를 정하면서(‘…혁명의 수도를 중심지로 하고 수도의 말을 기본으로 하여 이루어지는 …언어’) 남북 규범어에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또한 남북 표기 규범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어 ‘두음법칙 표기(한자어 첫머리의 ‘ㄹ’과 ‘ㄴ’을 ‘ㅇ’이나 ‘ㄴ’으로 적는 표기)’ 차이로 인해 남측에서 ‘여자, 노인, 비율’로 표기되는 낱말이 북측에서는 각각 ‘녀자, 로인, 비률’로 표기된다. 그리고 ‘사이시옷 표기’ 차이로 인해 남측에서는 ‘나룻배, 장맛비, 뒷일’로 표기되는 낱말이 북측에서는 각각 ‘나루배, 장마비, 뒤일’로 표기된다.

언어 순화 정책 면에서도, 남측은 소극적인 반면, 북측에서는 적극적으로 언어 순화 정책을 펼쳤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또한 남측은 영어권 외래어와 일본 한자어를 많이 받아들인 반면, 북측에서는 러시아권 외래어와 중국 한자어를 많이 받아들여 남북 어휘에 적지 않은 차이가 생기게 되었다.

대부분의 자유주의 국가에서처럼 남측에서는 어휘 변화를 자연 발생적인 것으로 보는 관점이어서 어휘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거나 규제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언어를 자연 발생적인 상태로 두되, 규범어 선정이나 표기법 등에 한해서만 국가에서 최소한의 규제를 할 뿐이다. 따라서 분단 이전에 존재하던 어휘의 경우, 남측에서는 형태나 의미 면에서 급격하게 변화한 것이 거의 없다. 반면 북측에서는 언어를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 혁명과 건설의 힘 있는 무기’로 보는데, 이러한 언어관이 반영된 정책이 대대적으로 시행되면서 남북의 어휘 체계에 적지 않은 차이가 발생하였다.
한편, 교류 단절에서 비롯된 남북 어휘 이질화로는 의미 변화에 따른 차이와 신어의 차이 등이 있다.

남측에서 ‘소행’은 ‘부정적인 뜻’으로만 쓰이지만, 북측에서는 긍정적인 뜻으로도 자주 쓰인다. 그리고 남측에서 ‘접대’는 주로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지만, 북측에서는 긍정적인 맥락에서 많이 쓰인다. 이처럼 분단 이전에 같은 뜻으로 쓰이던 낱말이 오랜 기간의 교류 단절로 인해 뜻이 달라진 경우도 적지 않다. 또한 남북의 어느 한쪽에서만 사용하는 신어들도 많이 생겨났다. 이러한 신어들은 사회 제도나 생활방식과 관련된 것이 많아 남북 겨레의 의사소통에 지장을 줄 수 있는 낱말들이다.

남측의 ‘국민’은 만 7세가 되면 초등학교에, 만 13세가 되면 중학교에, 만 16세가 되면 고등학교에, 그리고 만 19세에 대학교에 입학한다. 이에 비해 북측의 ‘인민’은 만 6세에 4년제 소학교에 입학하고, 만 10세에 6년제 중학교를 다니며, 그리고 만 17세에 대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남측 대학생에 비해 북측 대학생의 입학 연령은 두 살이 적다.
북측에서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곧장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을 ‘직통생’이라 한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하면 의무적으로 취업을 하거나 입대를 해야 하므로 재수생은 없다. 이처럼 남북은 학제에 차이가 있고, 또한 학습하는 교과목과 학습 용어에도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각기 다른 교육을 받은 결과, 남북의 겨레는 식당에서 함께 음식을 주문하고, 축구 경기를 보면서 대화를 나누는 일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 되었다.
남북의 어휘 이질화는 오랜 기간 진행돼 온 것이고, 또한 그 차이가 사회 체제와 생활방식에서 비롯된 것이 대부분이므로 하루아침에 극복되지는 않을 것이다. 독일의 경우처럼 체제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만, 언어의 통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분단된 현 상황에서는 어휘 이질화를 최소화하고, 언어 통일을 위한 준비 작업을 착실히 해 두어야 한다. 어휘 이질화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남북 겨레의 활발한 교류’가 있어야 하고, 또한 ‘남북 겨레가 함께 이용할 국어사전’이 있어야 하며, ‘남북 언어 정책을 논의하기 위한 협의 기구’도 있어야 한다.

우리 앞에 반드시 건너야 할 개울이 있다고 가정했을 때, 한 번에 건널 수 없다고 하여 그 개울이 메워질 때까지 마냥 기다릴 수는 없다. 개울을 건너기 위해 개울 중간중간에 징검돌을 놓고 하나하나 디뎌 가며 건너야 하듯이, 우리가 열망하는 언어 통일도 징검돌을 놓는 작업처럼 하나하나 준비하지 않을 수 없다. 징검돌을 놓는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로 여러 어려움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러한 작업을 하지 않고서는 언어 통일로 가는 징검다리를 완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13 Octo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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