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17 | 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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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장경판전

팔만대장경을 완벽하게 보존해온
조선 건축술의 백미

똑같은 형태의 두 건물이 마주보는 형태로 지어진 장경판전.똑같은 형태의 두 건물이 마주보는 형태로 지어진 장경판전.

유네스코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지닌 자연유산과 문화유산을 발굴·보호·보존하기 위해 1972년에 ‘세계 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을 채택했다. 우리나라는 1995년 석굴암·불국사, 종묘, 해인사 장경판전 등재를 시작으로 모두 12점의 세계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유산을 차례대로 소개한다. <편집자>


| 양영훈 여행작가 |

합천 해인사는 가야산(1430m) 자락에 깃든 고찰이다. 통일신라 애장왕 재위 당시인 802년에 순응, 이정이란 승려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오늘날에는 순천 송광사, 양산 통도사와 함께 삼보사찰의 하나로도 유명하다. 부처님의 말씀, 즉 설법(說法)을 집대성한 팔만대장경(국보 제32호)이 봉안돼 있어서 법보사찰(法寶寺刹)이라 불린다. 팔만대장경은 불법(佛法), 즉 부처님의 힘을 빌려 외침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어졌다.

고려대장경이 처음 만들어진 것은 고려 현종(1010~1031) 때였다. 당시 대군을 이끌고 침략해온 거란군을 물리치기 위한 목적이었다. 때마침 거란군은 퇴각했고, 백성들은 부처님의 힘으로 물리쳤다고 여겼다. 그때 제작된 대장경은 1232년에 몽골군의 침략으로 소실됐다.

강화도로 도읍을 옮겨 대몽항쟁을 계속한 고려 조정은 대장경을 다시 제작했다. 1237년에 2종 113권으로 시작된 대장경 제작은 11년 만인 1248년에 1496종, 6568권, 8만1258판 규모의 팔만대장경으로 완성되어 오늘에 이른다. 팔만대장경의 길이를 모두 합하면 총 3.2km, 무게는 8톤 트럭 35대 분량인 280톤, 경판에 새겨진 글자 수는 5200만 자나 된다.

팔만대장경을 제작하는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장경테마파크 내의 조형물.팔만대장경을 제작하는 광경을 생생하게 묘사한 대장경테마파크 내의 조형물.

팔만대장경은 방대한 규모뿐만 아니라 내용의 정확성에서도 세계 최고의 경판으로 손꼽힌다. 대장경 제작을 총괄했던 수기대사(守其大師)가 북송관판, 거란본, 초조대장경 등 당시의 모든 불경들을 철저히 비교해 오류를 바로잡고 빠진 한자들을 모두 채워넣은 덕택이다.

더군다나 목판에 새겨진 5200만 자의 글자는 마치 한 사람이 새긴 것처럼 똑같아서 예술적인 가치도 대단히 높게 평가되고 있다. 경상도 남해에서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은 처음에 강화산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

1318년에는 강화도 선원사로 가져갔다가 1398년에 합천 해인사로 옮겨졌다. 해안지방에 대한 왜구들의 노략질이 극심해지자 경상도 내륙 깊숙한 곳에 위치한 해인사를 보관 장소로 정했던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팔만대장경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고 생각한다. 훈민정음과 함께 우리 민족의 가장 보배로운 기록 유산이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은 2007년에 유네스코의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기는 했지만, 세계문화유산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앞선 1995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은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건물, 즉 장경판전(국보 52호)이다.

서체가 반듯하고 아름다운 대장경판의 각자(刻字).서체가 반듯하고 아름다운 대장경판의 각자(刻字).

장경판전이 언제 처음 지어졌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조선시대인 15세기에 지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오늘날 해인사의 전각들 가운데 가장 오래됐다는 이 건물은 길이 60.44m, 폭 8.73m의 건물 두 채가 서로 마주보듯이 자리 잡았다. 앞쪽인 남쪽 건물은 수다라장, 뒤쪽인 북쪽 건물을 법보전이라 부른다.

여러 차례의 화재로 해인사의 건물들이 잿더미로 변한 바 있지만 장경판전만큼은 한 번도 화마를 입지 않은 채 원형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주변 건물보다 높은 자리에 지어진 데다가 높은 담이 방화벽 역할을 한 덕분이기도 하다.

대통령 경호급 보호받아

장경판전에는 곳곳에 과학적인 장치가 숨겨져 있다. 우선 원활한 통풍을 위해 두 건물 모두 남쪽과 북쪽의 창 크기를 서로 다르게 하고 각 칸마다 창을 내었다. 또한 안쪽 흙바닥에는 숯과 횟가루, 소금을 모래와 함께 넣음으로써 자연적으로 습도가 조절되도록 했다. 그리고 곳곳에 뚫린 창살과 밝은 색의 회벽은 실내의 채광량을 알맞게 조절하는 역할을 한다.

현재 장경판전은 대통령 경호만큼이나 엄격한 감시와 보호를 받는다. 24시간 상주하는 감시인이 판전과 사찰 경내를 경비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에는 사찰 자체 인력의 신속한 대응을 위해 중형 소방차까지 배치돼 있다.

가야산 소리길은 운치 있고 풍광 좋은 명품 트레킹 코스로 꼽힌다.가야산 소리길은 운치 있고 풍광 좋은 명품 트레킹 코스로 꼽힌다.

그리고 판전 내부는 적정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기 위해 관람객의 출입까지 금지된 상태이다.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을 가까이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쉽지만, 영원히 보존하기 위한 조처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해가 된다.

팔만대장경과 장경판전이 있는 해인사를 들고나는 길에는 어김없이 홍류동계곡을 지나게 된다. 지리산 칠선계곡, 설악산 천불동계곡, 한라산 탐라계곡과 함께 우리나라 4대 계곡의 하나로 꼽힌다고 할 만큼 풍광이 아름답다. 줄곧 이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총길이 7.3km의 ‘해인사 소리길’은 운치 있고 풍광 좋은 명품 트레킹 코스로 인기가 높다.

‘소리(蘇利)’란 ‘이로움을 얻는다’는 뜻이다. 불교에서는 ‘극락으로 가는 길’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 2011년에 합천군이 개설한 이 길을 물소리, 새소리, 바람 소리 등을 벗 삼아서 자분자분 걷노라면 속진의 묵은 때가 저절로 씻겨나가는 듯하다.

대장경판전 입구의 팔만대장경 현판. 안쪽에는 이 판전의 옛 이름인
‘보안당’ 현판도 보인다.대장경판전 입구의 팔만대장경 현판. 안쪽에는 이 판전의 옛 이름인 ‘보안당’ 현판도 보인다.

계곡과 가까우면 물소리가 상쾌하고, 계곡과 멀어지면 새소리, 바람 소리가 청아하게 들리며 마음을 편안하게 위무해준다.

산중 숲과 계곡으로 구불구불 이어지는 길인데도 거칠지 않고 숨 가쁘지도 않으며, 그늘이 많아서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대개 아래쪽의 대장경테마파크 맞은편 각사교에서 출발한 뒤에 물길을 거슬러 올라 해인사에 도착하는 코스를 많이 이용한다. 하지만 물길의 흐름대로 함께 내려가는 것이 훨씬 더 심신을 편하게 한다.

해인사 삼층석탑 주변에 가득 내걸린 연등. 해인사 삼층석탑 주변에 가득 내걸린 연등.

소리길이 지나는 홍류동계곡의 여러 절경 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농산정(籠山亭) 일대이다. 일찍이 신라 최고의 학자이자 문장가였던 고운 최치원(857~?)도 이곳의 풍광에 매료돼 오래도록 머물면서 시와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에는 ‘고운 최치원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가야산 깊이 들어가서 지내다가 여생을 마쳤다’고 기록돼 있다. 홍류동계곡을 비롯한 가야산 일대에는 고운의 자취가 많이 남아 있다. 지명으로 남은 것도 있고, 바위에 새겨진 각자(刻字)도 있다. 그의 자취를 하나씩 더듬어보는 것도 가야산 해인사 여행의 색다른 즐거움이다.

여행 정보


숙식
경남 합천군 가야면 치인리의 해인사 상가지구에 해인관광호텔(055-933-2000)이 있다. 가야산 북동쪽 자락의 경북 성주군 수륜면 일대에도 가야호텔(054-931-3500), 자작나무갤러리펜션(054-933-9588), 시실리펜션(054-932-1133), 앤의정원(054-932-1126) 등의 숙박업소가 많다.
해인사 상가지구에 위치한 고바우식당(055-931-7311), 산사의아침(055-932-7328), 감로식당(055-932-7330), 삼성식당(055-932-7276) 등은 해인사뿐만 아니라 합천의 대표 맛집으로 꼽힌다. 사찰음식 전문점인 산사의아침 외에는 모두 산채정식, 산채돌솥비빔밥, 더덕구이 등의 산채 요리를 잘하는 집들이다.

가는 길
대중교통 / 대도시에서 해인사 버스터미널(055-932-7362)로 바로 가는 버스는 대구 서부정류장(대구 지하철 1호선 성당못역)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많다. 거의 매시간 1, 2대씩 출발한다. 대전 버스터미널에서도 해인사행 직행버스가 하루에 몇 편 있다.
승용차 /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나들목→합천·고령 방면→가야로→성주가야산로→해인사길→해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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