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17 | 20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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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최고 부유층 ‘평해튼’

정치적 지위에
모든 것이 걸려 있는 상위 0.1%

지난 5월 북한 노동당 7차 당대회를 취재하러 갔던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기자가 찍은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의 이탈리아 피자집지난 5월 북한 노동당 7차 당대회를 취재하러 갔던 미국 워싱턴포스트지 기자가 찍은 평양 미래과학자거리의 이탈리아 피자집

촘촘히 실행되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평양의 부유층에게 치명타를 날릴 것이다. 독점하던 고급 물품과 외화벌이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한 권한 다툼과 뇌물 수수가 더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평해튼’은 더 부패할 것이다.


북한의 제7차 당대회를 취재하던 외신기자는 평양 부유층의 삶을 보고 ‘평해튼’이라는 말을 사용했다. 물가가 비싸기로 이름난 미국 뉴욕 맨해튼에 빗대 경제난 속에서 호사를 누리는 소수 부유층을 꼬집은 것이다.

그 외신기자는 ‘북한의 1%, 평해튼에서 삶을 즐기다’라는 보도를 통해 젊은 1%는 해외에서 사 온 글로벌 브랜드를 주로 입고, 여자들 사이에선 엘르가 최고 인기이며, 남자들은 나이키나 아디다스 같은 스포츠 브랜드를 좋아한다고 전했다. 또 상위 1%의 부유층 젊은이들이 중국 여행을 갈 때는 친구들이 사다 달라며 전해준 쇼핑 리스트가 빠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평양 커피숍의 커피 가격은 4〜8달러였고, 아이스 모카 커피는 9달러, 주체탑 부근의 독일 식당에선 1등급 스테이크가 48달러, 바비큐 레스토랑에선 50달러짜리 요리도 있었다고 했다. 이 가격은 뉴욕의 유명 스테이크 레스토랑 가격보다 비싸다는 평도 곁들이면서 모든 것이 놀라웠다고 보도했다.

한 채당 20만 달러를 호가하는 평양 만수대거리의 고급 아파트한 채당 20만 달러를 호가하는 평양 만수대거리의 고급 아파트

외신기자가 만든 ‘평해튼’이란 단어 속엔 평양의 삶에 대한 놀라움과 신기함, 그리고 비꼼이 들어 있다. 그러나 맨해튼의 ‘자유’가 없다는 것을 지적하지는 않았다. ‘평해튼’을 즐기는 소수 부유층들도 정치적 지위를 잃으면 가진 걸 모두 잃는다는 북한의 상식을 전하지 못한 것이다. 집집마다 달러를 보유하고 있어 김정은 눈에 어긋나기만 하면 집 수색을 통해 각종 죄명을 뒤집어쓰는 불안감 속에 살아간다는 걸 지적하지 않았다.

‘평해튼’, 이 말은 요즘 만들어진 게 아니다. 북한에서 극소수의 삶은 이미 오래전부터 차별화됐다. 북한 체제의 특성상 권력을 쥐면 돈이 따라왔고, 권한을 쥐면 명품을 얼마든지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단속과 허가를 쥔 특수 직위는 북한 부자를 만들어내는 ‘물 좋은 곳’이며, 이들은 경쟁하듯이 최신형 텔레비전과 열대어 수족관, 페르시아 카펫 등을 집에 들여놓았다.

평양 고위층의 탈북이 적은 이유

김정은 집권 후 대외무역과 장사를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신흥 부자인 ‘돈주’는 빠른 속도로 증가했다. 돈주들이 장사를 하기 위해 필요로 한 건 바로 ‘고이는 것’이다. 상부에 갖다 바치는 뇌물, 이것이 장사의 윤활유 역할을 했다. 큰 장사의 뇌물 액수는 소득의 50%를 넘기도 한다. 이런 구조 속에서 북한에서 가장 잘사는 사람들은 중앙당 간부와 법 관련 종사자들이다. 검찰, 보위부, 보안서(경찰)가 대표적 자리다. 이들은 ‘단속’이라는 구실로 무역에 종사하면서 국가 돈은 떼먹는 간부들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인허가의 도장을 틀어쥔 노동당, 무역성, 외무성, 인민위원회 등도 ‘꽃 자리’다. ‘도장’으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자리는 각 지역 노동당 간부부 해외 파견 부서다. 해외 파견을 가려면 담당자에게 적어도 200~300달러는 주어야 하기에, 평양의 경우 해외 파견부서에 1년만 있으면 몇만 달러는 기본으로 틀어쥘 수 있다.

이번에 외신기자의 눈에 띈 건 이런 북한식 구조의 일부분일 뿐이다. 당대회를 계기로 외신기자들을 불러놓고 우리는 이렇게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려는 의도에 외신기자들이 제대로 걸려든 것일 수도 있다. 스테이크값이 뉴욕보다 비싸다는 걸 갖고 북한 부유층의 삶을 조망한 접근은 평양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지르는 오류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53층의 주상복합 건물. 이곳이 바로 평해튼이다.53층의 주상복합 건물. 이곳이 바로 평해튼이다.

‘평등’을 공언하며 출발한 북한 체제가 ‘불평등’을 극심하게 드러낸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불평등 구조 속에 살고 있는 대다수의 인민들은 이걸 모르고 있다. 성분과 토대를 기준으로 출세의 길이 나뉘고, 6·25의 피해자냐 가해자냐를 놓고 상하가 갈리는 북한식 신분제도가 지금도 철저하게 작동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평양과 지방의 차이, ‘돈주’라는 부유층과 절대적 빈곤층의 간극이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

상위 1%라는 표현에도 문제가 있다. 2500만 명의 북한 인구 중에 1%는 25만 명인데, 50달러 가까운 스테이크를 사 먹을 수 있는 부유층이 그 정도 되지는 않는다. 상위 0.1% 정도라고 해야 더 정확한 표현이다. 그들은 혼인으로 맺어져 있고, 두세 가지 고위직을 겸직하는 관례를 활용해 의존하고 돕는 ‘운명 공동체’를 구성하고 있다. 이들의 연계와 부조 정신은 북한 고위층의 붕괴를 방지하며, 이질적인 요소가 침투할 가능성을 철저하게 차단하고 있다. 평양 내부의 고위층 중에서 탈북하는 사례가 극히 적은 것이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지금 촘촘히 실행되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는 이들에게 치명타를 날릴 것으로 예상된다. 소수만이 독점하던 고급 물품과 외화벌이 수입이 줄어드는 만큼, 이를 만회하기 위한 권한 다툼과 뇌물 수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서 ‘평해튼’은 더 부패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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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수 서강대 정외과 교수
서강대 정치학 박사. 서강대 부총장, 일본 게이오대 방문교수, 북한연구학회 회장 역임. 현재 민주평통 통일정책분과위원장과 통일부 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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