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시대

vol 121 |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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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물류와 시장

운송업자·주유소 등장…
평양도 ‘택배’가 가능해졌다

2006년 11월에 찍은 평양의 배추 실은 트럭. 2006년 11월에 찍은 평양의 배추 실은 트럭.

북한에 생필품이 부족해지면서 새벽장, 골목장, 메뚜기장이 활기를 띠고 국경을 통한 물류가 등장했다. 이제는 우리의 택배처럼 물건만 부치거나 온라인 결제도 가능해지고 있다.


평양은 19개 구역과 3개 군으로 이뤄져 있다. 구글 어스와 그 지역 출신 탈북민의 증언에 근거해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을 조사한 결과 평양에는 구역과 군별로 각각 1개 이상의 시장이 존재했다. 각 도(道)의 시(市)급에는 2, 3개에서 많게는 8개 이상이, 군(郡)급에는 1개 이상의 시장이 존재해 이를 북한의 전 행정구역으로 확장하면 전국적으로 400개가 넘는 시장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는 국가가 인정한 종합시장이다. 종합시장은 기존의 농민시장과 달리 농·토산품에서 공산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품목을 취급한다. 일정 시설을 갖추고 세금(장세)을 걷는 공설시장을 가리키기도 한다. 북한에는 골목장, 메뚜기장 등 수많은 비공식 시장도 함께 존재한다.

종합시장인 평안남도 평성시의 옥전시장은 매일같이 북한 전역에서 상인들이 물건을 도매하러 몰려드는데 실질적인 거래는 오히려 옥전시장 바로 옆 공터의 새벽장에서 이뤄진다. 고객의 약 40%가 평양에서 온 상인인데 이들은 새벽시장에서 모든 거래를 마치고 오후 종합시장 개장 시간에 맞춰 평양으로 되돌아간다. 이러한 비공식 시장까지 합하면 북한의 시장은 400개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시장은 점차 계층화되고 있다. 부자 동네 시장과 가난한 동네 시장의 형세가 크게 엇갈리고 있다. 공급자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시장 구조가 전환되면서 소비지가 얼마나 큰지에 따라 시장 규모가 달라지고 있다. 시장은 인구밀도가 높은 순으로, 도급·시급·군급으로 계층화되었다.

도(道)급 시장이라고 해도 같은 도급이 아니다. 당국이 무역을 전면으로 개방하지 않았기에 북·중 국경지대와 얼마나 가깝느냐에 따라 물류의 양과 시장의 등급에 격차가 생겼다. 북한은 시장이 국경지대에 발달할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혜산, 회령, 무산, 온성, 라선, 신의주에 자연스럽게 시장이 형성되었다. 국경지역은 상품 가격이 상대적으로 저렴해 전국 각지에서 상인들이 집중되기 때문이다.

시장은 거대한 소비지가 있어야 발전한다. 따라서 2차적으로 국경지역과 가까운 대도시에 시장이 발달했다. 평양, 함흥, 청진, 원산, 신의주, 평성 등이 그러하다. 북쪽은 청진, 남쪽은 평성에 큰 도매시장이 만들어졌다. 평성은 평양이라는 거대 소비지를 끼고 있어 시장이 발달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시장 유형 ‘수요자 중심’으로 변화

1990년대 중반만 해도 평성은 아주 못사는 이름 없는 도시였다. 북한은 전면적인 무역 개방을 하지 않고 있어 어떤 경제 주체가 상품을 국내로 유입시키느냐에 따라 시장 유형이 달라지는 공급자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갖고 있다.

시장의 주체는 북한 내 화교, 중국 연고자, 중국의 조선족이었다. 이들은 친척 방문 형태의 소규모 보따리무역을 했다. 따라서 도매시장이 신의주와 회령, 혜산, 온성, 무산 등 국경지역에 발달했다. 그곳들은 한때 북한의 ‘홍콩시장’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확대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 고난의 행군을 계기로 무역회사에 대한 당국의 규제가 완화되면서 무역회사가 많이 설립되었다. 이들을 통해 중국에서 상품이 대량 유입되면서 도매시장은 국경도시에서 청진과 같은 국경 인근 대도시에서 더 발달하게 됐다.

대도시는 국경지대와 달리 장사 진입 장벽이 낮다. 국경지역으로 오기 위한 통행증이 필요 없어 상인들의 거래 비용을 감소시켰다. 대도시인 만큼 도로망이 발달한 교통 요충지여서 왕래하기가 비교적 수월하다.

북한의 교통망은 철도 중심인데 1990년대에 거의 파괴됐다. 따라서 한정된 운송수단으로 유통해야 하므로 국내 운송비는 외국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 그럼에도 북한 안의 남북 간에는 상품 이동이 발생했다. 이유는 북한의 남과 북에서 유입되는 상품의 품목과 가격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차이가 흐름을 만든 것이다.

북한에서 가장 큰 도매시장은 북쪽으론 청진, 남쪽으로는 평성이다. 평성은 주로 신의주에서, 청진은 혜산·회령·무산·온성·라선 등에서 상품이 유입된다. 신의주에는 대개 중국 단둥을 통해 상품이 들어온다. 상품의 원산지는 주로 선양, 다롄, 칭다오 및 중국의 남방이었다. 혜산, 회령, 무산, 온성, 라선에는 옌볜, 투먼, 룽징을 통해 상품이 유입됐다. 상품의 원산지는 대개 중국의 동북 3성이었다.

중국 단둥을 통해 유입되는 상품은 상대적으로 경제가 발달된 지역에서 조달됐기에 질이 좋다. 반면 옌볜이나 투먼, 룽징에서 들어오는 상품은 질이 떨어져 가격이 저렴했다. 신의주에서는 고가의 가전제품, 자동차와 오토바이 부품 외에도 한국 화장품 등이 유입됐다. 혜산, 회령, 무산, 온성, 라선에는 식품을 비롯해 자동차, 오토바이 등이 들어왔다.

라선으로는 의류, 신발 등 임가공을 위한 원부자재가 대량으로 들어온다. 평성은 이를 활용해서 만든 옷이 전국의 시장으로 퍼져나가는 곳이다. 청진은 전국 수산물 도매시장으로 유명하다. 사리원은 1990년대 중반 교통의 요충지로 부상하면서 곡창지대의 장점을 살려 국내산 농·토산품의 도매시장으로 유명해졌다.

이러한 물류 유통은 ‘도로 사정의 개선’과 ‘유통수단의 개선’으로 가능해졌다. 도로의 경우, 2000년 이후 북·중 간 수출 증대로 개선이 이뤄졌다. 유통수단으로는 중국에서 들어온 5톤에서 30, 40톤에 이르는 대형 컨테이너트럭이 있었다. 현재는 개인이 컨테이너트럭을 구입해 장거리 수송을 전문으로 하는 물류운송업자가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내 민간단체 수해 지원 신청, 통일부는 “NO”

유통업의 발달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일반 주민의 삶이 도보 중심이고, 배급체계가 정상일 때는 물자를 수송할 필요가 없었다. 자전거는 우리의 자가용과 맞먹을 정도의 고가였었고, 쉽게 보유할 수 없는 사치품에 해당했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의 시장 확대로 300~400달러의 일제 중고 자전거가 필수품이 되었다.

한쪽에서는 빵 한 조각이 없어 굶어 죽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고가의 일제 중고 자전거를 구입하기 위해 몰려드는 역설적인 현상이 벌어졌다. 장사를 위해 구입한 것이다. 이는 북한에서 운송수단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는 한 가구당 2, 3대의 자전거 보유는 일반적인 현상이 되었다.

2003년 피랍탈북인권연대가 비디어로 찍어온 장소 미상의 북한 장마당. 쌀과 싱가포르 포카(Pokka)사가 만든 과일음료 캔, 중국 맥주 등이 거래되고 있다. 배급 붕괴가 생필품이 유통되는 시장을 활성화시켰다.2003년 피랍탈북인권연대가 비디어로 찍어온 장소 미상의 북한 장마당. 쌀과 싱가포르 포카(Pokka)사가 만든 과일음료 캔, 중국 맥주 등이 거래되고 있다. 배급 붕괴가 생필품이 유통되는 시장을 활성화시켰다.

2000년대에는 기관 명의를 빌려 버스를 운행하는 개인 장거리 운송업자가 등장했다. 현재는 각 도뿐만 아니라 시·군급까지도 노선이 연결돼 일반인의 장거리 이동을 막던 장벽이 낮아졌다. 그러나 버스에서는 승객보다 짐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차장이나 운전수가 승객의 짐을 목적지까지 운송하게 됨으로써, 상인들은 짐을 지고 타 지역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어졌다. 버스가 택배업을 겸하게 된 것이다.

여객 운송에서 물류로 중심이 옮겨가면서 2000년대 중·후반에는 개인이 중국에서 5톤에서 최대 20톤짜리 컨테이너차량을 구입해 기관 명의를 빌려 물류를 전문으로 하는 개인 운송업자가 등장한 것이다. 청진~평양, 청진~평성으로 나가는 트럭은 일주일에 세 차례 정도 운행하는데, 한 차례당 편도로 1000달러가 넘는 수익을 창출해 고수익 업종으로 부상했다.

유통업 발달은 물류창고업을 비롯해 기름(가솔린, 휘발유) 장사, 통신수단의 보급, 사(私)금융시장 등 또 다른 시장들을 파생시켰다. 정기적으로 청진~평양을 왕래하는 10톤 트럭의 주인은 어느 공장기업소의 창고를 빌려 평양으로 나가는 모든 물건을 집적시키고, 짐이 모여지면 떠났다. 개인집을 빌려서 물류업을 하는 것보다 감시가 덜해 한층 효율적이었다.

지역별 환율차이 지역별 쌀 가격 차이*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사람(상인)은 가지 않고 짐만 운반이 가능해지면서 운전수는 현금을 운반하는 ‘은행 기능’을 수행하게 됐다. 상인들이 돈을 가지고 이동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돈주가 전국적인 연계망을 갖게 되면서 돈이 움직이지 않아도 결제가 가능한 이른바 ‘이관(移管) 결제’ 시스템도 생겨났다.

이를 위해 휴대전화가 필수품이 되었다. 주요 길목에는 기름 장사꾼들이 모여 있어, 운전수는 어느 곳에서도 가솔린을 넣을 수 있게 되었다. 기름은 국가 통제품이지만 고부가가치 상품이기에 기름 장사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장사꾼이 현지에 가지 않아도 상품 거래가 가능하게 됐다는 사실은 그만큼 이동과 정보의 통제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며 나아가 지역 내 격차를 좁히는 데 크게 기여한다.

운송수단의 확대와 발전은 상품의 ‘대량 유통’을 가능하게 했다. 기존의 ‘승리28’ 자동차로 한 차례 최대 1.5톤의 짐을 운반했다면 지금은 한꺼번에 20톤, 30톤씩 운반한다. 상품 공급의 증가는 상품 가격을 인하시키고 시장을 더욱 경쟁적으로 만들어 균형가격이 형성되게 만든다. 가격을 안정화하는 것이다.

운송수단 확대로 지역별 가격 격차 줄어

북한에서도 이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과거 원산에서 수확한 복숭아를 평양에서는 한 달 후에나 먹을 수 있었다면, 지금은 바로 먹을 수 있다. 최근 몇 년간 환율 및 식량 가격은 상당히 안정적이며, <그림> 1과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신의주, 평양, 혜산 간 환율 및 식량 가격은 거의 균등하다.

1990년대 북한에서 최대 300만 명이 넘는 아사자가 발생했다는 설이 있었다. 그 원인은 식량의 총 생산량 감소에도 있지만, 전력난으로 철도운송체계가 마비돼 생산된 식량을 균등하게 전국으로 분배하는 데 실패해서 초래된 측면도 강하다. 운송체계의 마비로 식량 가격이 폭등하고, 지역별 가격 차이가 발생했었다. 그 속에서 횡령과 부패 등 약탈이 빈발해 원활한 식량 수송을 더욱 어렵게 한 것이다.

유통업의 발달은 북한에서도 동일 상품에 대해 전국적으로 동일 가격이 형성되는 ‘일물일가’의 법칙이 작동하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원리는 식량 가격에도 영향을 미쳐 식량 가격의 안정화에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북한의 식량 가격, 식량 문제를 고려할 때 북한의 운송체계도 주요 요소로 주목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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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이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일본 도호쿠대 경제학 박사. 통일부 자문위원, 베이징대학교 한반도연구센터 객원연구원, 일본 ERINA 동아시아경제연구소 초빙연구원 등 역임. 주요 논문 ‘5·24 조치가 북·중 무역에 미친 영향에 관한 분석’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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