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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토론회

“북의 점진적 변화 이끌어야 하지만 급진적인 변화에도 대처해야”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토론회
<사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14차 남북관계 전문가 토론회 장면.

‘남북의 경제 통합을 통한 점진적인 통일’인가, 아니면 ‘북한 정치체제의 전반적이고 급진적인 변화’가 더 현실성 있는 통일 방안인가. 제14차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대토론회에서는 이 같은 쟁점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가 통일을 위해 대비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를 분야별로 다뤘다.

2월 25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가 통일연구원과 공동으로 주최한 제14차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토론회가 열렸다. ‘북한의 변화와 통일 준비’라는 주제로 진행된 토론회에는 통일 관련 기관과 학계의 전문가 18명이 참석해 의견을 나눴다.

토론회는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현 수석부의장은 “한반도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이루려면 북한의 변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우리가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과제가 바로 북한 인권 개선”이라고 북한 인권 문제를 강조했다. 최진욱 통일연구원장이 사회를 맡은 제1세션에서는 김병연 서울대 교수가 ‘북한의 점진적 변화와 남북 경제 통합’이라는 주제로 발제를 했다. 김 교수는 “독일처럼 급진적 방식으로 통일을 이룰 경우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경제적 통합을 통한 점진적 방식의 통일이 최선”이라고 전제하며 경제적 통합 원칙을 다음과 같이 제시했다.

“북한의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북한에 최소한의 체제 이행이 선행된 후 경제 통합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남북 경제 통합을 북한의 체제 이행보다 너무 앞서서 진행하면 북한의 자생적 경제성장에 해로울 수 있으므로 서로 단계를 맞춰나가야 한다. 북한과의 초기 경제협력 과정에서는 북한 정권의 직접적 통제 대신 그 권한을 위임받은 국제적 조직이 경제특구를 관장하게 하는 것도 방법이다. 우리가 해야 할 통일 준비는 ‘사람과 제도, 자본과 산업의 준비’인데, 그중에서도 북한의 인적 자원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통합의 가장 핵심적 과제다. 현재 두 체제의 국민 간에 인식 차이가 너무 크고 북한 노동력의 질이 남측보다 뒤떨어져 당장 통일이 되더라도 북한 주민이 경제 활동을 이어가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사진> 김병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제1세션 발제).

핵과 안보 문제 선결 없이 경제 통합 어려워

발제에 이어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주로 경제 통합 외에 통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적, 대외적 변수를 더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제성호 중앙대 법학과 교수는 “점진적 통일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 선행조건이 해결됐을 때 가능한, 매우 낙관적 전망으로 그 실현 가능성은 낮다”면서 “전반적 통일과 점진적 통일을 별개로 이원화하지 말고 북한에 좀 더 개혁적인 정권이 들어서고 변화의 의지가 갖춰졌을 때를 상정한 제3의 중도적 시나리오를 찾아보자”고 제안했다.

고상두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북한이 경제개혁을 시도한다 해도 얼마나 오래 지속할 수 있는가가 관건이다. 북한이 선군(先軍)정치를 포기하지 않는 한 개혁이나 개방은 오래가지 못한다. 남북 경제 통합이 성공하려면 북의 정치개혁이 먼저 성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경제 통합을 통한 북한의 점진적 변화 시나리오가 바람직하기는 하나 정치적인 역동성을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다만 우리의 대북정책이 북한의 체제 이행을 촉진하는 긍정적 기능을 할 수 있는 만큼 남측의 정책적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고영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현재 북한은 체제 유지가 가능하다고 판단하는 선에서만 시장 자율화 등을 허용하고 있다. 체제를 위협한다 싶으면 언제라도 시장화를 금지할 것이다. 우리가 할 일은 정권이 금지시키려 해도 할 수 없을 만큼, 시장체제를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활성화시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동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김병연 교수가 주제 발표 중 “북한에 자본이나 상품이 너무 급속히 유입될 경우 북한 노동력의 저임금을 유지할 수 없고 가격경쟁력을 저하시킬 수 있으므로 이를 막아야 한다”고 했던 점을 들어, “이런 급속한 자본 유입 억제에 외국의 협조를 어떻게 이끌어낼 수 있는지 구체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안보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채 경제 문제가 별도로 진행될 수는 없으므로 핵과 안보 문제 해결부터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북한의 체제 이행은 각 단계별 전환이 순조롭지 않고 단절적으로 이뤄질 수 있으므로, 북한이 한 단계에 정체돼 다음 단계로 진전하지 못할 때 우리가 이를 어떻게 앞으로 끌어낼 수 있을까 고민해야 하며, 이를 위해 국제적 협력기구 구성도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수훈 경남대 사회학과 교수는 “통일 문제는 주변국과의 관계에서 동떨어진 것이 아닌 만큼 동북아 경제권 통합이라는 맥락에서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고,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발제 내용 중에 들어 있는 ‘초국가적 기구에 경제특구 운영 위임’이라는 개념과 관련해 위임 형식의 경제 개발이란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한편 성기영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지금까지 동등한 관계의 두 체제가 통일에 성공한 적은 없으며, 어느 한쪽이 압도적 견인력을 갖고 있을 때 성공했다. 우리도 사실상 남측이 통일의 압도적 견인차가 돼야 하며, 단 그 과정은 ‘설득에 기반을 둔 방식’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과 교수는 “북한이 경제적 자생력을 갖추게 됐을 때 과연 통일을 바랄 것인지, 혹은 독자 정부로 남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지 않은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고, 이석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경제 통합은 자연스럽고 점진적인 과정인 반면 통일은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것이란 차이가 있다. 정치적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경제가 통합된다고 해서 자연히 통일이 이뤄지는 것이 아니므로, 경제 이행을 위해 어떤 정치적 조건이 갖춰져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진하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소장
<사진> 김진하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소장(제2세션 발표).

북한 주민의 정보 접근권 확보가 중요

박찬봉 민주평통 사무처장의 사회로 진행된 제2세션의 주제는 ‘전반적 변화의 전망과 통일 준비’라는 주제로 발제를 맡은 김진하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센터 소장은 “통일을 위해서는 경제 협력을 통한 점진적 변화보다 핵 문제, 안보 문제와 정치개혁을 포함한 전반적 변화가 선결돼야 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체제의 전면적이고 급진적인 이행은 탈사회주의 체제 전환의 주요 경로 중 하나로, 구조적, 역사적 조건이 갖춰져 있다면 경제와 정치개혁이 동시에 전면적으로 진행될 수 있다. 특히 위기 구조가 영속화된 북한 체제의 모순과 위기를 감안할 때 언제 정치적 격변이 일어날지 모른다. 이럴 때 북한의 변화에 대처하기 위한 비상책으로서 전반적 변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이 같은 북한의 전반적 변화를 위해서는 북한 내부에서 정치개혁을 이끌어나갈 만한 세력을 조직화하고 양성해야 한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이동선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과거 북한에서는 외국과 유착됐다는 의심을 받은 모든 세력을 숙청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북한 내부 세력에 대한 한국의 관여가 북한의 체제 이행에 과연 득이 될 것인가를 고려해야 한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표방이나 인권 문제 제기 등은 중국이나 북한을 불안하게 만들 수도 있으므로 강도 조절에 유의해야 한다는 점도 거론했다.

조윤영 중앙대 정치국제학과 교수는 “북한이 어떤 형태로 변화하는가에만 초점을 맞추지 말고, 우리 자신의 준비와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특히 안보 이슈와 핵 이슈에 이어 사이버 통일안보 문제까지 제기되는 현실 상황에서 좀 더 큰 시야에서 통일의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김근식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급진적 통일은 자칫 폭력적인 형태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 문제로, 과연 급진적 통일이 평화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있다면 그 방안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로운 통일이 이뤄지려면 북한 내부에 자생적인 통일 세력이 자라나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시장 확산이 좋은 방법이다. 햇볕정책의 장점을 수용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었다.

김석진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한이 주민들 차원에서부터 시작해 이미 엘리트층도 어느 정도 바뀌어가고 있다는 데서 희망을 발견한다”며 “이런 북한의 변화를 촉진하고 장려하되 간섭이 아니라 돕는다는 자세를 지켜야 한다. 무엇보다 당장 우리가 할 일은 북한의 인적 자원을 육성하는 것으로, 이는 농업 개발, 환경 변화, 보건의료, 교육 분야 등의 협력 사업을 통해 가능하다”고 방안을 제시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역시 “북한은 매우 경직된 사회라 경제 체제가 바뀌면 정치도 변화할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렵다”며 “북한이 변화하려면 주민들의 정보 접근권 확보가 중요하므로 우리 정부 역시 북한 주민들의 정보 접근권 강화를 위한 방안과 공감대 형성에 주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북관계 전문가 초청 토론회
<사진> 제14차 남북관계 토론회에 참석한 통일문제 전문가들. 현경대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과 박찬봉 사무처장(그 오른쪽)이 토론회의 시작과 끝을 열고 닫았다.

북한 변화에 외부 개입은 부작용 낳을 수도

이어 김용호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북한 내부의 변화 주도 주체가 과연 어떤 이들이어야 하는가, 북한 주민들이 인정할 수 있는 변화의 주체 세력을 어떻게 창출할 수 있는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분석했다.

박종철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한 정치권에 비상사태가 발생할 경우 외국의 개입을 어떻게 방지할지, 북한 체제 이행에 필요한 경제적 협력은 국제사회에서 어떻게 이뤄나갈지 등도 고민해야 한다”며 ‘북한에 과도제체가 들어설 경우 우리의 참여방식’에 대한 화두를 던졌다.

고상두 연세대 지역학협동과정 교수는 “북한에 위로부터의 혁명을 이룰 수 있는 대안 세력이 만들어지려면 북한의 생활수준이 향상되고 시민사회가 형성돼야 한다. 우리의 지원정책이 북한의 생활 개선에 일익을 담당할 수 있으며, 경제 지원을 통한 북한 정치사상범 보호 등의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의 체제 변화는 궁극적으로 북한 내부의 주체에 의해 일어나야 하므로 지나친 개입은 피해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박찬봉 사무처장은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북한의 점진적 변화를 통한 통일과 전반적 변화를 거친 통일은 둘 중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거나 잘못된 게 아니며, 이 두 가지 과정에서 바람직한 조화를 찾아내 정책에 반영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북한이 변화하는 폭과 속도는 결국 북한이 이를 얼마나 수용하는가에 달려 있다. 즉 주된 변화 당사자는 북한이어야 한다. 그러나 북한의 변화가 북한 스스로만의 문제는 아니고, 북한에만 맡길 수도 없으므로 국제사회와 한국이 협력할 수 있는 여건 조성 차원에서 북한이 핵 폐기와 인권 개선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변화와 통일 준비 문제를 함께 협의할 남북대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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